종교, 영성, 수련, 철학

지옥은 없다.

물레.방아 2018. 11. 16. 16:16
지옥은 선한 영혼을 악한 영혼으로부터 영원히 갈라 놓을까? 내가 접해 본 사례에서 만났던 면담자들은 영혼이 무서운 고통을 받는 장소란 지구를 빼 놓으면 없다는 것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영혼은 죽은 후에 영계로 가며 누구나 인내심과 사랑으로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혼은 영계에서 분리되는데, 이런 일은 안내자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다. 그들은 다른 영혼들과 같은 여정을 가지 않는다. 악을 행해서 영계로 재진입할 때 격리당하게 되는 영혼들은 다른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충동을 밀쳐내지 못한 연약한 영혼들이다. 이런 영혼들은 한동안 다른 영체들과 어울릴 수 없는 것 같다.

초보 단계의 영혼이 몇 인생 동안 계속해서 부정적인 행위를 습관적으로 저질렀다면, 그들은 개인적인 영적 고립을 견뎌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엄격한 감독 아래 심도 높은 배움을 위하여 한 곳으로 모아진다. 이것은 처벌이 아니고, 자기 성찰을 하여 영혼을 재조립하는, 일종의 연옥 같은 것이다.

(영혼들의 여행 - 마이클 뉴턴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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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영혼 중에 어떤 영혼은 그들의 영혼 그룹으로 곧바로 가지 못한다. 그런 영혼들은 육체적인 몸에 오염되어 죄악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누구를 해칠 생각이 없었는데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과 의도적으로 악을 행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행위의 정도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악과 관련되었던 영혼들은 피술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환자실’ 이라고나 할 특별한 곳으로 데려가게 된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거기에서 그들의 에너지는 다시 온전해지도록 재구성된다. 지은 죄의 성격에 따라 이런 영혼들은 좀더 빠르게 지구로 윤회하여 돌아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악한 행위의 희생자가 되는 삶을 다음 생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배우는 데에 게으름을 부리고 특히 여러 번의 삶을 그렇게 잔인하게만 산다면 그는 잘못된 행동의 형상으로 치부되고 만다. 그러한 영혼들은 영혼의 세상에서 고립된 곳에 오랫동안, 어쩌면 지구의 세월로 1000년 이상을 지낼 수도 있다. 고의적이었건 의도적이었건 영혼이 잘못한 일은 내생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영혼 세상의 지침이다. 이것은 형벌도 아니고 고행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카르마적 성장을 위한 기회인 것이다. 지옥이란 것이 지구에나 있다면 있을까, 영혼들에게는 지옥이 없다.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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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을 통해 영계에 효과적으로 진입하려면, 피술자는 무엇보다도 고도로 숙련된 LBL 시술자를 찾아야 한다. 최면을 통한 영계의 경험이 피술자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피술자가 처음에는 영계의 모습을 상당히 두려운 곳으로 보고할 수도 있다. 훈련을 제대로 받은 노련한 시술자라면, 이런 혼란스러운 보고를 일반적으로 '지옥'이나 '사악한 영혼'에 대한 피술자의 종교적인 믿음 같은 의식이 개입한 현상으로 이해한다. 영계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천 건의 사례를 연구하며 영계가 사랑과 연민, 용서, 정의의 세계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

(영혼들의 기억 - 마이클 뉴턴 엮음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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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혼들의 흐름에서 떨어져나간, 아주 심하게 손상된 영혼들이 있다. 귀향하는 영혼들 중에 이런 비정상적인 영혼의 수는 많지 않다. 이런 영혼들은 육체를 가지고 지상 생활을 하는 다른 영혼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떠도는 영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육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영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싸우는 영혼들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삶에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질러 파멸되었거나 그 비슷한 경우의 영혼들이다. 첫번째 경우에는 영혼 자신이 떠돌기로 결정한 것이나, 두 번째 경우는 영적인 안내자가 의도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 이런 영혼들을 다른 영혼들로부터 격리시킨다. 이 두 경우 모두 영혼의 안내자는 복구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떠도는 영혼들의 유형은 다양하므로 나는 그들을 분리해서 설명하겠다.

첫번째 유형을 우리는 귀신이라 부른다. 이러한 영들은 죽은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삶을 평화롭게 마치고 싶어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유쾌하지 못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영혼들은 사람들을 해치려고 마음을 점령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때로는 '악령'이라고 잘못 불리기도 한다. 부정적인 영을 가진 사람들은 심령과학 분야에서 심각한 조사를 받아 왔다. 불행히도 영성의 이런 부분은 현혹되기 쉬운 사람들의 감정을 노리는 파렴치한 비술의 요소까지 띠게 되었다.

문제가 있는 영은 지상에서 지낸 인생에 이루지 못한 사연들이 있는 미숙한 영혼들이다. 그들은 그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불만이 많은 이런 부정적인 영혼들이 표현해 내고자 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매개체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명상적인 의식 상태에 깊이 든 사람이 이런 영혼들이 보내는 사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한 신호를 포착해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안정을 찾지 못한 이런 영들은 영적인 안내자가 아니다. 진정한 안내자들은 치유자이지 독설스러운 메시지를 가지고서 우리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영들은 대부분의 경우 지리적으로 특정한 장소에 매어 있다. 귀신 현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사람들은 이런 불안정한 영들이 지구와 영계 사이에 위치한 낮은 아스트랄 플레인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 영혼들은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악마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나 개인적인 연구에서 얻은 생각이다. 그들은 불만이 아주 많아서 육체적인 죽음 후에도 자신들의 의지로 지구 근처에 남기로 정한다. 그들은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우며, 그들의 안내자까지도 가까이 가지 못할 정도의 적개심으로 손상되고 만 영혼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우리는 부정적이고 길 잃은 영들에게 귀신쫓기 같은 방법을 써서 인간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영들은 떠나라고 설득하면 떠나서 마침내는 영계로 바르게 간다.

보살펴 주는 안내자가 있는 질서 있는 세상이 영의 세상이라면,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는 존재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보내는 그런 영혼들이 어떻게 계속 존재하도록 허용이 되는가? 죽음 속에서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 되겠다. 또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우주에서 우리들은 많은 격변을 겪어내므로 영혼들이 돌아가는 길에도 영적인 불규칙과 이탈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을 스스로 가두고 만 이 불행한 영들은 아마도 위대한 설계의 일부분일 것이다. 때가 되면 그들은 지구의 아스트랄 플레인으로부터 이끌려 영계의 온당한 자리로 안내된다.

(영혼들의 여행 - 마이클 뉴턴 p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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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얘기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나 나는 귀신이 된 영혼들을 더러 접할 수 있었다. 강연 때면 자애로운 영혼의 안내자들이 어떤 영혼이 길을 잃고 홀로 불행하게 떠도는 것을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귀신 연구에 내가 공헌한 것이 있다면, 일반인들이 귀신에 대해 갖는 오해를 살펴보고 귀신 현상을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귀신의 입장에서 설명했다는 것일 것이다.

내가 최면 요법으로 윤회하는 삶과 삶 사이에 있는 인생 연구에 헌신하기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 나는 전생을 마친 후 꽤 오랫동안을 귀신으로 지냈던 피술자를 만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상식 안에서 잠깐 귀신이었던 사람을 나는 귀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 아이들을 구하다가 젊어서 죽은 피술자가 있었다. 이 선생은 죽은 뒤에 아이들과 또 갑자기 죽어버린 자신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려고 몇 달 동안 마을을 배회하며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 마침내 지구를 떠났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결국에는 지루해져서요." 나는 영혼 중의 아주 일부만이 지구를 떠나는 평균 시간을 넘기고 귀신이 된 일이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귀신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다음 사례는 우리가 마치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려 지구의 아스트랄 플레인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안내자는 억지로 우리들을 영혼의 세계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혼의 안내자가 너그러운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안내자들은 방관자적인 태도로 지켜본다. 그리고 또 안내자들은 대개 죽는 바로 그 순간에는 우리 옆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영혼은 자기 생각대로 혼자 떠돌 수가 있다.

대부분의 영혼은 죽은 직후 부드럽게 잡아다니는 느낌을 받는데, 지구의 아스트랄 플레인에서 멀어질수록 잡아다니는 느낌은 더욱 분명해진다. 천상의 존재들이 우리의 죽음을 즉시 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사람의 소망을 존중해준다. 시간이란 것이 영혼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못 지닌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를 바란다. 죽은 사람은 머릿속에 시간 관념이 없으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며칠, 몇 달, 몇 해를 지상에 머무르는 것이다. 영국 성곽에 400여 년을 머물다가 마침내 영혼의 세계로 돌아간 귀신은 그 동안을 40여 일, 심지어는 40시간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귀신은 자신이 죽은 것을 모르거나 자신의 환경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될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귀신들은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갇힘은 물질적인 장벽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정신적인 조건 때문인 것이다. 영혼들은 어떤 한정된 아스트랄 플레인 안에서 길을 잃는 법이 없으며, 영혼들은 자신이 지구에서 삶을 마쳤다는 것을 안다. 귀신들의 혼란은 어떤 장소, 어떤 사람, 어떤 사건을 놔주지 못하고 집착하는 데 있다. 갈 데로 못 가고 있는 것은 자발적으로 결정한 바이다. 그러나 구제 마스터(master)라고 불리는 특별한 안내자들은 이런 혼란스런 영혼들의 때를 살펴보며 기다려준다. 우리에게는 자유 결정권이 있다. 죽음의 경험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영혼의 안내자들은 우리들의 명석하지 못한 결정도 존중해준다.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귀신들이란 지구적인 것에 오염되어 떠나는 데 곤란을 겪는 좀 덜 성숙한 영혼들이다. 지구의 햇수로 오랜 기간 떠나지 못하는 경우는 특히 영혼의 성숙도와 관련지어 볼 수가 있다. 영혼이 뒤에 남는 이유는 다양하다. 인생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끝났을 때 영혼은 행로에서 이탈할 수가 있다. 이 경우의 영혼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훼방당했다고 느낀다. 귀신들의 죽음은 지독한 고통을 수반한 경우가 많다. 또 영혼들은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려고 남아서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다.

1994년, 한 젊은 여성이 밤중에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에라네바다 산 속을 운전하고 가다가 가파른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이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50피트 언덕 아래로 떨어진 쭈그러진 자동차도 5일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차 속에는 생명이 위독한 그녀의 세 살 된 아들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한 운전자가 나체로 누워 있는 젊은 여자의 귀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장소는 쭈그러진 자동차가 있는 곳 바로 위의 길이었다. 이것은 귀신이 극적인 방법으로 사고를 알린 것이며, 아이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그 순간에 발견되어 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녀의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어떤 영혼이, 내정되어 있는 카르마(karma)의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갑작스레 변한 것에 대해 예상치 못했다는 느낌뿐 아니라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어 혼란을 일으켰을 때, 귀신이 된다. 살해당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영혼이 귀신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다음 사례는 전형적인 귀신 이야기이나, 이러한 부정적인 일들이 귀신을 위하여 어떻게 건설적으로 해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닥터 N : 엘리자베스, 나는 당신이 그 인생의 마지막 날로 갈 것을 원합니다. 이게 몇 년인지 그리고 이 날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얘기해주십시오.

영 : 1919년이고요. (피술자는 52세이다) 나는 유행성 독감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병에 저항도 별로 안 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냥 살아 있으니 산 거구나 하고 지냈거든요. 나의 외로움과 슬픔... 농장을 유지하려는 투쟁... 나의 마음은 상처를 받았어요.

나는 이제 엘리자베스를 임종 장면을 거쳐 빛으로 데려가려고 시도한다. 그녀가 농장에 머물러 있으므로 나의 시도가 소용이 없다. 나는 그녀가 귀신이 되려고 하는 좀 어린 영혼임을 곧 발견한다.

닥터 N : 왜 당신은 지구의 아스트랄 플레인에서 위로 가는 것을 거부합니까?

영 : 난 안 갈 거예요. 아직 떠날 수 없어요.

닥터 N : 왜 그렇습니까?

영 : 스탠리가 돌아오기를 농장에서 좀더 기다려야 해요.

닥터 N : 하지만 당신은 벌써 22년간을 기다려왔고 스탠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 : 그래요.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게 되지가 않아요.

닥터 N :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합니까?

영 : 나는 영혼으로서 떠다닙니다.

나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녀가 귀신의 모습과 행동으로 농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는 세상 어디에 스탠리가 있는지 스탠리의 에너지 파동을 잡아내지 않는다. 경험이 있는 영혼들은 이 일을 할 수가 있다. 좀더 질문을 해본 결과, 엘리자베스가 농장을 사려는 사람들을 무섭게 해서 쫓아보내면 농장이 가족들에게 그냥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지역 사람이면 누구나 그 농장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버림받았다고 울며 집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다고 나에게 말한다.

닥터 N : 지구의 햇수로 얼마나 오래 당신은 스탠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영 : 어, 4년이에요.

닥터 N : 긴 세월 같지 않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

영 : 몇 주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울고... 그리고 슬퍼서 신음하지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사람들을 무섭게 한다는 걸 알지요. 특히 무얼 넘어뜨릴 때는.

닥터 N : 당신에게 해롭게 군 사람도 아닌데 왜 그들을 무섭게 합니까?

영 : 내게 일어난 일들이 섭섭했다고 표현하려고요.

닥터 N :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십시오.

영 : 누가 나를... 불렀어요.

닥터 N : 오, 당신이 이 슬픈 상태로부터 놓여나게 해달라고 청을 했군요.

영 : (오랜 사이를 두고) 음... 그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는 내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그는 내게로 와서 말해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닥터 N : 이 말을 당신에게 누가 합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영 : 길 잃은 영혼을 구제하는 마스터가 나를 불러서 나는 그와 함께 지구에서 옮겨갑니다. 우리들은 기다리는 동안에 얘기합니다.

닥터 N : 잠깐, 그는 당신의 안내자입니까?

영 : (처음으로 미소지으며) 아니오. 우리는 나의 안내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와 함께 있는 영은 도니입니다. 도니는 나 같은 영혼들을 구제합니다. 그것이 그의 임무입니다.

닥터 N : 도니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도니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

영 : (웃으며) 도니는 작은 난쟁이 요정같이 보입니다. 주름진 얼굴에 낡아빠진 모자를 쓰고... 도니가 나한테 말할 때면 그의 수염이 흔들립니다. 도니는 내가 더 머물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향으로 돌아가서 스탠리를 만나는 것이 더 재미나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말합니다. 도니는 아주 희극적이고 나를 웃기지만 사실은 아주 다정하고 현명합니다. 도니는 내 손을 잡고 더 얘기를 하기 위해 아름다운 장소로 옮깁니다.

닥터 N : 그 장소에 대해서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영 : 음, 여기는 나같이 슬퍼하는 영혼들을 위한 장소예요. 꽃이 핀 아름다운 목장같이 보여요. 도니는 나에게 명랑해지라고 말하고, 사랑과 행복으로 나의 에너지를 채워주고 내 마음을 정화시켜줍니다. 꽃들 사이에서 나를 아이들같이 놀게 해주며 자기는 햇볕 속에서 쉴 테니 나더러 나비들을 쫓아다니라고 말합니다.

닥터 N : 멋진 데 같군요. 이게 얼마나 오래 갑니까?

영 : (내 질문에 언짢아하며) 내가 원하는 만큼이죠.

닥터 N : 이때 도니가 당신에게 스탠리에 관한 얘기와 당신이 귀신으로 했던 행동들을 얘기합니까?

영 : (싫어하며) 도니는 절대 그러지 않아요! 도니는 구제자이지 티신(피술자의 안내자)이 아니에요. 그런 질문은 나중에 하세요. 지금은 내가 쉬는 때예요. 도니의 늙은 얼굴은 친절과 사랑으로 가득하고, 도니는 야단치는 법이 없어요. 나더러 그냥 놀라고만 그래요. 도니의 임무는 내가 마음을 깨끗이 하도록 도와서 내 영혼이 다시 건강해지도록 하는 거예요.

엘리자베스의 에너지가 생기를 되찾자 도니는 그녀를 티신에게 데리고 가서 굿바이 키스를 했다. 그러고 나면 영혼의 세계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오리엔테이션 준비 과정이 시작된다.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9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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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이중성


몇 년 전 한 잡지에 영국 시골 지방을 여행하던 미국 여성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녀는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조그만 샛길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곧 그녀는 황폐해진 오래된 저택(스탠리의 저택이 아님)에 도달하게 되었다. 저택의 관리인은 그 집에는 귀신이 나오는데 그 귀신의 모습이 당신을 닮았다고 말했다. 뜰을 걸어다니며 그녀는 그 무엇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풀어주려 간 것이다. 그녀 영혼의 두 부분이 똑같이 신비스런 방법으로 서로를 불렀다. 하나의 영혼이 둘로 나뉘어 각각의 삶을 사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목적이 있다.


제 1장에서 나는 영혼의 이중성을 설명하며 어떻게 영혼들이 그들의 에너지를 나누어 한 번에 하나 이상의 생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대부분 영혼에게 있어서 그들 에너지의 일부는 세상에 태어나 윤회의 삶을 살고 있를 때일지라도 영혼의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 영혼의 분리를 더 설명하겠으나, 갈라진 영혼 에너지는 특히 귀신 연구에 도움이 된다. 지난 번 사례에서 본 엘리자베스가 귀신이 되어 집 주위를 배회할 때, 영혼 세상에 남아 있는 그녀의 다른 에너지는 교훈을 얻고 다른 영혼들과 교류한다. 그리고 또 그 에너지는 다시 윤회하여 새 삶을 살아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귀신 나오는 집을 찾아간 여자가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귀신들의 형체는 지구에서 살던 모습의 껍데기일 뿐이며 그 안에는 영혼 의식이 없다고 말하는 일부 귀신 연구 권위자의 의견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영혼들은 어떤 인생에서는 육체의 에너지를 좀 적게 넣기를 선택한다. 그렇지만 비록 귀신일지라도 영혼 에너지가 없는 텅 빈 껍데기는 아니다. 영혼 세계에 남아 있는 귀신 에너지는 지구를 떠도는 다른 자아를 좀더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피술자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성숙되지 못한 대부분의 영혼들은 죽은 뒤에 에너지를 전하거나 합치는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다음은 귀신이 된 영혼의 영혼 동반자한테서 들은 것이다. 이 귀신은 1단계의 어린 영혼으로 피술자의 첫 남편이었다.


케이스 15


닥터 N : 당신은 첫 남편인 보브가 지난 번 생을 마치고 귀신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인지 설명해주십시오.


영 : 지난 번 생에서 보브는 우리 결혼 초기에 살해당한 후 귀신이 되었습니다. 보브는 절망에 찼고, 나를 염려해서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닥터 N : 그렇군요. 그 인생에서 보브는 대강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지녔는지 말할 수 있습니까?


영 :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에너지의 4분의 1 가량만 지녔는데, 그것은 이 같은 정신적인 위기를 대처하기엔 충분치 못해요. 보브가 잘못 판단한 거지요.... (멈춘다)


닥터 N : 만일 보브가 우발적인 사건에 대처할 수 있게 자신의 에너지를 더 많이 가졌더라면 귀신이 안 되었을까요?


영 : 그건 대답할 수가 없지만 에너지가 더 있었더라면 더 강했을 것이고... 슬픔을 더 잘 견뎠겠지요.


닥터 N : 그렇다면 그는 지구로 왜 그렇게 적은 에너지를 가지고 왔습니까?


영 : 음, 영혼의 세상에서 하는 일에 더 참여하기 위해서예요.


닥터 N : 보브의 안내자가 왜 그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지구로 가라고 하지 않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영 : (고개를 젓는다) 아니오,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강요받지 않아요.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해요. 보브는 귀신이 될 필요도 없었어요. 보브는 에너지를 더 가져가라는 충고를 받았으나 고집이 센 데다가 또한 다른 삶을 사는 것도 고려해보고 있었어요. (두 개의 평행적인 삶)


닥터 N : 내가 바로 이해했나 보겠습니다. 보브는 자기 에너지 용량의 25%만 가지고 위기를 정상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한 것입니까?


영 : (슬프게) 그런 것 같아요.


닥터 N : 죽어서 그 몸은 가버렸는데도요?


영 : 상관없어요. 몸의 효과는 아직도 그에게 남아 있고 그는 환경과 싸울 충분한 에너지가 없는 거예요.


닥터 N : 보브는 영혼 세계에 있는 자신의 에너지에 합쳐져서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귀신으로 머물렀습니까?


영 : 오랫동안은 아니에요. 한 30년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요... 경험 부족에다가... 그가 얻어야 할 교훈도 있고... 그러자 우리들의 선생이 부름을 받지요... 아시잖아요... 방황하는 영혼들을 지켜보는 지구를 순찰하는 존재들이... 귀신으로 떠도는 보브의 에너지를 본향으로 데려오라고 선생들에게....


닥터 N : 그런 존재들을 잃어버린 영혼의 구제자라고 어떤 피술자들은 부릅니다.


영 : 그거 잘 붙인 이름이네요. 보브의 영혼은 정확히 말해 잃어버린 영혼은 아니에요. 단지 고통스러울 뿐이지요.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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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는 영혼들

다음 사례는 좀더 진보된 영혼으로, 귀신은 아닌데 죽은 뒤 본향으로 가려 하지 않은 영들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은둔하는 영혼들에게 두 가지의 동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케이스 16

닥터 N : 영의 세계로 돌아갈 준비가 안 된 죽은 사람은 없습니까?

영 : 있어요. 어떤 영혼들은 육체를 벗어났는데도 지구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아요.

닥터 N : 그들은 전부 귀신이겠군요.

영 : 아니에요. 그러나 그들이 원하면 귀신이 될 수도 있어요. 대개는 귀신이 아니죠. 그들은 단순히 다른 누구와의 접촉도 원하지 않을 뿐이에요.

닥터 N : 그러면 그들의 영적 에너지는 죽은 뒤 본향으로 가지 않습니까?

영 : 그래요. 영혼 세상에 남아 있는 그들 에너지는 그대로 있지만.

닥터 N : 그렇다고 나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둔하고 있는 영혼들은 잠시 그러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구의 햇수로 오랫동안을 지구의 변방에 머무릅니까?

영 : 다양해요. 어떤 영혼은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가능한 한 빨리 지구로 다시 오고 싶어해요. 이러한 영혼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형태를 언제까지나 보존하고 싶어해요. 그들은 대부분의 영혼처럼 본향에 가서 쉬고, 공부하고,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이런 유형의 영혼 중에는 지구에서 앞장서서 싸운 투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들은 육체적인 인생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해요.

닥터 N : 내가 알기로는 우리들의 안내자는 우리가 지구 근처에서 어떤 종류의 패턴 속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새로운 인생으로 곧바로 못 가게 합니다. 이런 영혼들은 자기들의 그룹으로 돌아가고, 상담을 받고, 배운 것을 공부하고, 새 육체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런 정상적인 과정을 모릅니까?

영 : (웃는다)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그러나 안내자는 본향으로 돌아가서 받을 혜택을 못 보는, 극도로 절망 속에 있는 영혼에게는 강요하지 않아요.

닥터 N : 그렇군요. 그러나 어떤 종류의 적응 기간을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육체를 받지 못할 텐데요.

영 :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네, 그렇지요.

닥터 N : 어떤 영혼들은 지구로 도로 가기도 원치 않고 영혼 세상에 있는 자신들의 자리로도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영 : 그래요. 다른 유형은....

닥터 N : 이 두 유형의 영혼이 육체 없이 지구를 떠돌며 귀신으로서 사람들을 놀래키지 않는다면 그런 영혼들을 혼란스런 영혼이라 불러야 할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뿐이니 말입니다.

영 : 그들은 귀신과는 다릅니다. 그들의 행동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 무엇... 고통... 참을 수 없는 것... 그런 데서 오는 거지요. 그들은 그런 것들을 놓지 못해요. 흔한 일은 아니에요. 그들은 몹시 불행해서 선생하고도 얘기하려 들지 않아요.

닥터 N : 왜 그들의 안내자는 그들이 저항할지라도 책임지고 그들을 영혼 세계로 더 깊이 끌어올리지 않습니까?

영 :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강요당하면, 영혼들은 겁쟁이가 된다는 것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 문 닫고 지내는 데서 얻는 교훈을 못 배울 것입니다.

닥터 N : 좋아요. 그런데 난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영혼 세계에 들르는 일이 없이 곧바로 태어나고 싶어하는 영혼들에게 새로운 육체를 즉시 줄 수는 없는 것입니까?

영 : 혼란스런 영혼들에게 새 육체를 준다는 것은 인생을 시작하는 아기들에게 완전히 불공평한 일임을 모르시겠어요? 영혼들은 은둔하고 싶으면 은둔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결정을 내리고 도움을 청해요. 혼자서는 발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거예요. 새 육체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요.

닥터 N : 귀신으로 지구를 떠돌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본향으로 가고 싶지도 않은 영혼들은 어디로 갑니까?

영 : (슬퍼하며)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창조해낸 공간이에요. 그들은 육체 생활의 기억들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현실을 만들었어요. 어떤 영혼들은 정원같이 아름다운 데 살고요. 어떤 영혼들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영혼들은 감옥 같거나 창문이 없는 방을 자신들을 위해 만들었어요. 이런 공간 속에 자신을 가두고 빛도 들어오지 않게 하고 아무와도 접촉 없이 지내요. 자기가 자기에게 내리는 형벌이죠.

닥터 N : 악행과 연관된 영혼들은 영혼 세계 안에 있는 어떤 장소로 인도된다고 들었습니다.

영 : 맞는 얘기예요. 그러나 그런 영혼이라도 일단 영혼 세계 안에 있으면 음악도 듣고,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에너지를 치유받지요.

닥터 N : 우리들의 안내자가 스스로 만든 유배 생활을 하는 이 모든 유형의 영혼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영 : 지칠 때까지 시간을 줍니다. 선생들도 힘든 일이죠. 선생들은 이러한 영혼들이 자기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와 자기의 영혼 그룹이 자기에게 보일 반응을 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영혼들은 부정적인 에너지에 차 있어서 생각을 명확히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가둔 장소에서 나오겠다는 동의를 얻어내기까지 몇 번씩 안심시켜주어야 합니다.

닥터 N : 안내자마다 설득하는 테크닉이 다르리라고 보는데요.

영 : 그렇죠... 기술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요. 어떤 선생은 영혼 스스로가 고립되어 있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영혼 근처에 가려고도 안 합니다. 이건 좀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죠. (쉬었다가 계속한다) 다른 선생들은 자주 찾아가서 애기합니다.

닥터 N : 그러다가 드디어 이 유형의 모든 영혼은 자신을 해방시킵니까?

영 : (쉬었다가) 이렇게 말해두지요. 모든 영혼은 각각 다른 형태의 격려 혹은... (웃는다) 설득을 통해 드디어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해방된다고요.

나의 연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영혼의 기억이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례 16에 표현된 영혼의 고립과 고독은 속죄의 장소로서 기독교의 연옥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이 종교적인 개념은 영혼 세계 안에 고립되어 있던 기억의 단편들이 지구에 와서 변형된 것은 아닐까? 영혼의 은둔에 대한 나의 연구와 교회에서 정의하는 연옥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큰 차이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연옥을 천국으로 가기 전에 죄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는 자체 정화 장소로 정의하고 있다. 나의 피술자들은 어떤 영혼들은 자체 정화를 하고 어떤 영혼들은 에너지 회복을 요구받는다고 말한다. 어쨌건 우리는 이 장소에서 완전무결하게 정화되거나 다시 윤회할 필요가 없도록 충분히 완성되어서 나오지 않는다. 영혼의 이런 고립 상태는 추방도 아니다. 요즘 들어서 좀 덜 보수적인 기독교회에서는 과거처럼 지옥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보편구제설(Universalism)을 거부하고 누구나 다 천국에 간다는 신념을 거부한다. 그들은 회개하지 못한 죄를 짓고 죽은 영혼은 연옥을 거쳐 지옥으로 가서 영원한 불길 속에서 고통받는 형벌에 처해진다고 한다. 교회에 의하면 영원히 저주를 받은 자란 축복받은 자의 반대로, 신과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사후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생각을 쉽게 허용하지 못한다. 나의 연구에 의하면, 영혼은 자기가 스스로 인생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 회개한다.

영혼 에너지는 파괴될 수도 없고 활동이 정지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구에서 오염된 것을 정화하거나 에너지 형태를 재구성할 수는 있다고 피술자들에게 들었다. 지구에서 죽고 난 후 고독 속에 남겨지기를 요구하는 영혼 중에는, 그 영혼이 자기 파괴적이어서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자신의 에너지가 다른 영혼들을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고립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영혼은 자신이 오염되었다고 생각진 않지만 누구에게서 위안을 받을 준비는 아직 안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립을 원한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영혼들은 그들 에너지의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혼은 안내자에게 치유의 장소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고 영혼의 세계에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는 자신들의 영혼 그룹들과 떨어진 곳에 홀로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치유의 장소가 있다. 홀로 묵상 한다고 해도 영혼 세계 안에서의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치유이다. 사례 16의 혼란스런 영혼은 아직 도움을 받겠다는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내가 접한 모든 사례는 죽고 난 뒤 우리에게는 영적인 마스터들의 도움을 얼마 동안이든지 거절할 권리가 있음을 시사한다.

강연 때면 나는 스스로를 가두는 유배의 장소가 '하등 플레인' 혹은 '하등 세계'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이런 질문이 두려움에 근거를 둔 믿음에서 나왔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은 말이 주는 인상 때문에 생긴 오해인지도 모르겠다. 유배지란 영혼 스스로가 만든 장소로, 혼자 남겨지기를 원하는 영혼이 꾸며낸 주관적인 공허한 현실이라는 설명이 더 나은 해석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영적인 중심에서 떨어진 공간이란 것은 영혼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나는 이들 영혼이 다른 영혼들이 거주하는 영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어떤 영역 안에서 길을 잃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정신적인 분리일 뿐이다.

침묵의 영혼들은 그들이 불멸의 존재임을 알고는 있으나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도움을 거절하고 고립 속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보라. 지난 생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했던 행위와 자기 자신에게 했던 것들을 카르마적인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쳤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받았을 수도 있다. 주변 환경에 무력한 희생자였다고 느낀다는 얘기도 나는 꽤 자주 듣는다. 그들은 슬픈 동시에 노엽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 그룹과 교류하지 않는다. 자신을 책망하며 한정된 이해 속에서 고통스러워만 한다. 나는 이러한 조건들이 연옥에 대한 정의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욕망과 취향과 진아(眞我)를 가지고 상상의 자아 세상을 산다"고 했다. 여기에다가 나는 "진아에 대한 우리들의 자각은 진아와 합치되는 것을 위협하는지도 모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들의 장소 안에 고립된 영혼은 진정한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호된 채찍을 가한다. 홀로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분석해보는 것은 중요하며, 영혼 세계에서 영혼들이 하는 정상적인 일들도 그런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란 속에 있는 영혼들은 보통의 영혼들같이 도움을 요청하여 고통에서 놓여나고 앞으로 나아가고 변화를 이루려는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매일 저 세상으로 떠나는 영혼 인구 중에 극소수만이 이러한 영혼이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11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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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NDE 연구 중 지박영역과 공동영역에 관한 부분과, 그것이 어떻게 마이클 뉴턴 박사님의 연구를 재증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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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귀신이 되는 영혼들과 2)은둔하는 영혼들 중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가능한 한 빨리 지구로 다시 오고 싶어하는 (자신의 육체적인 형태를 언제까지나 보존하고 싶어하는) 영혼들은 지박영역의 영혼들로 연구되었고, 3)은둔하는 영혼들 중 새로운 육체로 다시 지구에 오고 싶지도 않고 영계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하는 영혼들은 공동영역의 영혼들로 연구된 듯 합니다.

진실은 하나이고 그것은 마이클 뉴턴 박사님의 연구에서 가장 정확히 밝혀져 있기에 당연히 영계에 대한 올바른 모든 연구(신뢰할 수 있는 연구자나 체험자에 의해 연구&조사, 체험 된 임사체험, 유체이탈,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전생퇴행, 채널링 등)는 뉴턴 박사님의 연구와 일치되고 있고, 그것은 지박&공동영역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일치들만 추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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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N : 그렇다고 나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둔하고 있는 영혼들은 잠시 그러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구의 햇수로 오랫동안을 지구의 변방에 머무릅니까?
영 : 다양해요. 어떤 영혼은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가능한 한 빨리 지구로 다시 오고 싶어해요. 이러한 영혼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형태를 언제까지나 보존하고 싶어해요. 그들은 대부분의 영혼처럼 본향에 가서 쉬고, 공부하고,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이런 유형의 영혼 중에는 지구에서 앞장서서 싸운 투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들은 육체적인 인생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해요.
닥터 N : 내가 알기로는 우리들의 안내자는 우리가 지구 근처에서 어떤 종류의 패턴 속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새로운 인생으로 곧바로 못 가게 합니다. 이런 영혼들은 자기들의 그룹으로 돌아가고, 상담을 받고, 배운 것을 공부하고, 새 육체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런 정상적인 과정을 모릅니까?
영 : (웃는다)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그러나 안내자는 본향으로 돌아가서 받을 혜택을 못 보는, 극도로 절망 속에 있는 영혼에게는 강요하지 않아요.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114~115)
=
*사랑과 빛의 본성은, 그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들 중 일부는, 오직 재탄생만을 희망합니다.
*사후에, 어떤 영혼들은 터널을 통해 두개의 낮은 영역 - `지박영역`과 `공동` - 을 매우 빠르게 통과해서 더 높은 영역으로 여행합니다. 다른 영혼들, 특히 육체를 넘어 정신에 침투한 세속적 욕망을 심하게 탐닉해온 영혼들은 `지박영역`으로 들어가서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헛된 시도를 합니다.
*지옥은 지구 영역에 매우 근접되어 존재하는, 부정적 사고가 표출된(negative thought-forms) 층을 나타낸다. 그곳은 심적장애, 탐닉, 공포,죄,노여움,분노,후회,자기연민,오만함 또는 우리 자신의 빛의 힘으로 부터 우리를 차단하는 모든 것들 속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또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P.M.H. Atwater)
*지옥에는 알콜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사후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아직 육체를 갖고 있는 알콜이나 마약 중독자들과 가까이 하여 술이나 마약이 주는 감각을 대리로 느껴보려고 지구 가까이에 머문다. 그들은 저승에서 이러한 욕구로 가득한 영체(soul body)가 정화될 수 있는 도움을 받아, 자신들 역시 계속해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다. (Margaret Twedd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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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N : 어떤 영혼들은 지구로 도로 가기도 원치 않고 영혼 세상에 있는 자신들의 자리로도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영 : 그래요. 다른 유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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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N : 귀신으로 지구를 떠돌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본향으로 가고 싶지도 않은 영혼들은 어디로 갑니까?
영 : (슬퍼하며)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창조해낸 공간이에요. 그들은 육체 생활의 기억들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현실을 만들었어요. 어떤 영혼들은 정원같이 아름다운 데 살고요. 어떤 영혼들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영혼들은 감옥 같거나 창문이 없는 방을 자신들을 위해 만들었어요. 이런 공간 속에 자신을 가두고 빛도 들어오지 않게 하고 아무와도 접촉 없이 지내요. 자기가 자기에게 내리는 형벌이죠.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115~117)
=
*어떤 영혼에게는 `공동`이 아름다운 천상의 경험이 되는데, 다른 모든 것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이 계발해온 사랑과 빛을 온전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영혼에게는 `공동`은 공포스럽고 무서운 지옥인데, 모든 것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이 계발해온 사랑과 빛이 부족함을 온전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랑은 자신이 그곳으로 가져온 것 뿐입니다. 공동 그 자체에는 아무런 사랑이나 빛이 없으며 이로 인해 공동을 떠나서 높은 영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열망하는 순간, 불려나오듯 빛이 나타납니다.
*ND 보고에 의하면 `공동(Void)`은 `사랑, 빛 그리고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에 대체적으로 일치합니다. 그곳은 완전하고 깊은 어둠으로 오직 그 안의 영혼들의 사념의 무늬들(thought patterns)만 존재합니다. 그곳은 영혼들이 마음을 살펴보고, 바로 전 지상에서의 경험을 숙고하여 그 다음에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완전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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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N : 우리들의 안내자가 스스로 만든 유배 생활을 하는 이 모든 유형의 영혼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영 : 지칠 때까지 시간을 줍니다. 선생들도 힘든 일이죠. 선생들은 이러한 영혼들이 자기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와 자기의 영혼 그룹이 자기에게 보일 반응을 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영혼들은 부정적인 에너지에 차 있어서 생각을 명확히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가둔 장소에서 나오겠다는 동의를 얻어내기까지 몇 번씩 안심시켜주어야 합니다.
닥터 N : 안내자마다 설득하는 테크닉이 다르리라고 보는데요.
영 : 그렇죠... 기술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요. 어떤 선생은 영혼 스스로가 고립되어 있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영혼 근처에 가려고도 안 합니다. 이건 좀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죠. (쉬었다가 계속한다) 다른 선생들은 자주 찾아가서 애기합니다.
닥터 N : 그러다가 드디어 이 유형의 모든 영혼은 자신을 해방시킵니까?
영 : (쉬었다가) 이렇게 말해두지요. 모든 영혼은 각각 다른 형태의 격려 혹은... (웃는다) 설득을 통해 드디어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해방된다고요. (영혼들의 운명1 - 마이클 뉴턴 p117~118)
=
*그것은 어떤 영혼도 지박(earthbound)이나 공동(Void) 영역에 영원히 갖혀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무한히 자비로워서 결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영적 고통 속에 오랜동안 방치되지 않도록 합니다. 다만 그들의 영적 성장에 맞을 경우에 한해서 그곳에 남을 수 있도록 합니다.
*어떤 영혼은 `공동`에서의 시간이 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영혼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지요. 이것은, `공동`에서 벗어나려면 어둠을 넘어서 사랑과 빛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빛이 나타나고, 터널이 영혼들을 빛으로 그리고 더 많은 지도(instruction)를 위한 천상으로 인도합니다. 빛을 거부하거나 일생을 빛을 모른채 허비한 영혼들은, 사랑의 빛을 열망하게 되기까지 억겁의 시간(eons of time)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공동(Void)`은 징벌(의 장소)이 아닙니다. 모든 영혼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환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완전한 장소입니다. 자신의 비참함에 너무나 몰두되어 빛을 볼 수 없는 영혼들을 위해, 그들이 자유로이 선택하여 찾을 때 도울 수 있도록, 많은 수의 빛의 존재들이 그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어둠을 넘어 사랑과 빛을 선택하는 것이 `공동`에서 자유롭게 되는 열쇠입니다. 그러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순간, 빛과 터널이 나타나고 영혼은 빛에 이끌립니다.
*그때 이 그룹의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의 내 삶의 부정적 에너지를 제거하거나 끌어내고,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사랑을 내게 채워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Sherry Gid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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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뉴턴 박사님의 연구를 재증명해주는 수많은 신뢰할 수 있는 채널러들 또한 동일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채널링의 고전인 제인 로버츠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일부 사람들이 '지옥'으로 오해하는 현상과 공간에 대한 설명입니다. 또한 마이클 뉴턴 박사님의 연구를 재증명해주는 대부분의 전형적인 임사체험 외에, 일부 종교/문화적 특색을 띠는 임사체험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실관은 사후 체험에 색깔을 입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때도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체험을 해석하기 때문이죠. 마치 지금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여러분 개인의 관점으로 일상생활을 해석하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수많은 변수에 따라 여러분의 의식은 조금 빠르거나 조금 늦게 몸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노망든 사람들은 이미 퍼스낼리티의 조직적인 부분이 몸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리적 공황 상태를 불러일으켜 자기 보존과 방어 기제를 이용해 스스로 의식을 일종의 혼수 상태로 빠뜨린 것이죠. 그런 경우에 회복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옥의 불길에 대한 믿음은 지옥에 대한 환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천국에 대한 믿음 역시 달콤한 환각을 빚어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의 관념과 기대에 따라 현실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은 어떠한 현실에 있든 간에 변함없는 의식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앞서와 같은 환각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의식은 반드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전형적인 천국의 권태로움과 정체는 치열한 의식을 오랫동안 만족시킬 수 없죠. 또한 그곳에는 의식의 상태와 환경에 대해 설명해 줄 스승이 존재합니다. 그 누구도 환각의 미로 속에 홀로 남겨지지는 않습니다.

사후에도 여러분은 육체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몸, 즉 이미지를 걸치게 되어 있습니다. 단, 그것과 육체 간의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에 육체의 세계에서 그 몸을 실험해 보면 대번에 그것이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의식이 육체의 산물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면 사후에 여러분은 육체에 남아 있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여러분을 기꺼이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일종의 명예 경비원 같은 퍼스낼리티 집단이 존재합니다. 이 집단은 살아 있거나 죽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살아 있는 이들은 육체가 잠든 사이에 유체 이탈 체험을 통해 그런 활동을 실행합니다. 그들은 의식의 투사와 그에 따른 감각 현상에 친숙하기 때문에 다시 육체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지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특히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까닭은 육체의 현실 속에 있으면서 죽음과 관련한 감정이나 느낌을 좀더 빨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수면중의 활동을 기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의식의 투사와 기동성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죽음에 대비하는데 대단히 유익합니다. 여러분은 미리 사후 환경을 체험하고 그때 마주칠 상황에 대해 공부해 둘 수 있습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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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번째 대화

여러분의 의식은 육체적인 죽음 이전에도 육신을 완전히 떠날 수 있습니다. 의식은 그때그때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육체를 떠납니다. 경우에 따라 육체는 의식의 지휘 없이 어느 정도는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주요한 의식이 일정 기간 자리를 비웠다 하더라도 원자, 세포, 기관의 단순 의식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후에는 평소의 믿음과 발전에 따라 의식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발전이란 꼭 지적인 발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성은 반드시 감정이나 직관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죠. 하지만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린다면, 자유로워진 의식이 사후 세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할 특정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 그것은 자신이 지각하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의식이 육체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죠.

그러다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임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일시적이나마 스스로 망각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퍼스낼리티들은 육체를 떠난 즉시 새로운 상황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의 조문객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호기심과 경이로움이 충만한 시각으로 시신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서 개개인의 배경, 지식, 습관에 따라 태도와 행동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동시에 주변 환경도 대개는 변화하게 마련이죠. 이때 생생한 환각 현상은 육체적 삶처럼 실감나는 체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생각과 감정은 육체의 현실뿐만 아니라 사후 체험까지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체험이 비실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마치 육체적인 삶이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말이죠.

특정한 이미지들이 그런 과도기를 상징하는 데 사용되어 왔거니와 그중 많은 것이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틱스강(역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강)을 건너는 이미지를 그중 하나로 꼽을 수 있죠.

죽음을 앞둔 사람은 다소 일관된 방식으로 특정한 과정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합니다. 사전에 저승 세계의 지도가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임종할 때 의식은 저승의 강에 대한 환각을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이미 죽은 친지와 친구 역시 거기에 참여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심오한 의미를 지닌 의식이죠. 저승의 강은 지상의 강처럼 실재하며 적절한 지식이 없는 여행자가 함부로 혼자 건널 수 없을 만큼 위험합니다. 그래서 여행자가 강물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언제나 안내자가 강변에 나와 있습니다.

환각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 강이 비실제적인 환상이란 뜻은 아닙니다. 상징 자체도 일종의 실재물이죠. 안내도에 나와 있는 길의 일부분으로서 말입니다. 다만 이제는 저승의 강에 대한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 대부분은 그것을 읽는 방법을 모릅니다. 대신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연옥과 징벌을 믿습니다. 임종하는 사람이 그런 상징을 믿는 경우에는 또 다른 종류의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때 안내자는 기독교의 성인이나 위인으로 가장하여 나타납니다. 그럼으로써 임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틀과 방식으로 사후 상황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 운동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좇을 만한 특정한 안내도를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충족시켜 왔습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었을 때, 그 안내도는 총천연색 그림과 가르침이 담겨 있는 교과서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안 됩니다. 이미 목적을 이루었고 의식의 혼란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단적인 관념의 틀이 형성되어 있지 않던 시대에는 의식 혼란의 현상이 빈번했죠. 특히 임종자가 사후의 삶을 완전히 부인할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후에도 여전히 의식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나큰 기쁨을 맛보지만, 또 어떤 이들은 생각이나 감정의 창조적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한 행동 법칙을 새롭게 배워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그런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군데의 각기 다른 환경을 전전하면서도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아무런 일관성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마구잡이로 갖가지 체험을 합니다. 자신의 생각 자체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물론 사후의 상황이 항상 이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죽음 직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이 밖에도 다른 단계가 존재하죠. 안내자는 여러분을 그런 상황에서 구하기 위해 환각의 일부분으로 참여합니다. 하지만 임종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종자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언젠가 나 자신도 안내자로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루버트가 수면중에 그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신의 지도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므로 안내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꽤 까다로운 상황입니다. 이 사람에게 구세주로 받아들여졌던 이미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구세주로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러 차례 모세로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아랍인을 구한 경우도 있었죠.

그 아랍인은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와 관련해 내가 겪은 어려운 점을 설명하자면 먼저 그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그는 평소 유대인을 증오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모세가 알라신보다 힘이 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긴 세월 동안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온 은밀한 죄로 작용했죠. 그는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기독교인에게 잡혀 터키인 한 무리와 함께 매우 끔찍하게 처형당했습니다. 처형자들은 그를 가장 먼저 끌고 나와 입 안에 불붙은 석탄을 집어넣었죠.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알라신의 이름을 외우다가 나중에는 필사적으로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의식이 몸 밖으로 나왔을 때 모세가 와 있었죠

그는 알라보다는 모세를 더 믿었기에 나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지 간신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의 영혼을 위해 전투가 벌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세와 알라가 그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는 폭력으로 죽었으면서도 여전히 폭력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종의 전투를 벌이지 않고서는 그에게 평화나 만족 혹은 휴식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나와 친구, 그 외 다른 이들이 그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각기 알라와 모세(나)로 나타나 하늘의 구름바다 양편으로 갈라서서 그의 영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 가련한 친구는 우리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죠. 당시 그러한 상황은 아랍인의 믿음에서 빚어진 현상이었지만, 우리는 그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그의 믿음대로 움직여 주어야 했습니다.

그 아랍인은 여호와를 모르면서 그저 모세만을 믿었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를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알라가 거대한 검을 뽑아 들자 나는 그것에 불을 붙여 떨어뜨렸습니다. 불붙은 검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사방 천지가 불길에 휩싸였죠. 아랍인은 다시금 울면서 몸을 떨었습니다. 그는 알라신과 내(모세) 뒤에 군대가 도열해 있는 것을 보았죠. 그 친구는 우리 셋 가운데 하나가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는데 그 희생자는 바로 자신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양쪽 군대가 정렬한 구름층이 거리를 좁히자 나는 "살인하지 말라"라고 적힌 석판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때 알라는 또 다른 검을 쳐들었죠.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물건을 교환했고 양쪽 군대는 한 무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알라와 나는 태양의 형상으로 합쳐진 채 "우리는 하나다"라고 선언 했죠.

우리가 이렇게 정반대의 관념을 하나로 합쳐 주지 않았다면 그 가련한 사람은 평화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상충되는 관념이 통일된 후에야 비로소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안내자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사건이 있기 전, 나는 수많은 생애에 걸쳐 날마다 수면 상태에서 또 다른 존재의 지도를 받으며 안내자로 활동해 왔죠.

남을 안내하다 보면 자칫 자기가 환각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다른 스승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심리적 과정에 대한 정밀한 조사는 필수이고 그에 따라 필요한 환각의 종류는 끝이 없죠. 이를테면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평소에 몹시 귀여워했던 죽은 애완견의 형태를 띠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환각 활동은 죽음 직후 일시적으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전에 받은 훈련과 발전 수준에 따라 사후 환경을 제대로 의식합니다. 이들은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간 휴식을 취한 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이들은 자신의 윤회적 자아를 깨닫고 다른 생애에서 알았던 퍼스낼리티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죠. 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의식하는 상태에서 환각을 경험하거나 과거생의 한 부분을 다시 살아 볼 수도 있습니다. 그후 자기 점검을 통해 자신의 모든 업적, 능력, 약점 등을 돌아보고 육체적 삶으로 돌아갈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누구나 이런 단계를 경험할 수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자기 점검을 제외한 다른 단계는 생략되어 버립니다. 감정은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친구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친구는 활동의 다른 단계로 진보한 상태라서 종종 안내자가 얼마 동안 친구로 가장하여 죽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각성의식 상태에서 유체 이탈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식적으로 몸을 떠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식적인 유체 이탈의 경험은 단순히 말로 듣는 설명보다 사후의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죠.

육체적 존재 자체도 어찌 보면 집단적 환각의 결과임에 유의하십시오. 사람들이 생각하는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후에는 현실 체험이 지상에서보다 훨씬 조직적이며 복잡하게 뒤얽힙니다. 개인적인 환각에 빠진 채 현재 체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강렬한 상징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환각은 퍼스낼리티가 극심한 변화에 처해 있거나 서로 반대되는 사상을 통합해야 할 때, 혹은 하나의 사상을 버리고 다른 사상을 취해야 할 때 당사자의 꿈속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 전에 일어나든 죽음 이후에 일어나든 지극히 강렬한 감정과 깊은 의미를 수반한 심리적이며 심령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은 비록 꿈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문명의 진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인은 사후에 자신의 삶을 반드시 화해해야 할 어떤 짐승으로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징물과의 다툼이나 만남이 크나큰 파급 효과를 미치는 까닭은 그것을 통해 당사자는 자신의 다른 모든 부분과 화해해야 하기 때문이죠. 앞의 환각이 그 동물을 타거나 친구가 되거나 길들이거나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등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간에 체험자의 의식은 각각의 길들을 심사숙고해 보게 되며, 그 결과는 자신의 미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후 자기 점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삶의 상징화를 채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삶을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처리하는 자기 점검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런 삽화적 이미지들이 연속해서 필요하기도 합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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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사후에 자신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지상에서 알았던 사람들에게 감정적 에너지를 계속 집중시킵니다. 가령 살아 있을 때 특정한 프로젝트에 매달렸다면 그것을 완성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물론 안내자가 참된 상황을 깨우쳐 주려고 하겠지만 안내자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을 만큼 집착에 빠집니다. 육체의 현실에 대한 감정 집중은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의식이 육신을 떠나 일정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심신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의식은 사후 체험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시신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할 수가 있죠. 특히 평소에 퍼스낼리티가 자신을 육체적 형상으로만 생각했을 경우에는 이런 일이 빚어집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의식은 육체의 메커니즘을 재활성화시키려다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심지어 장례식이 끝난 지 한참 후에도 자신의 시신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슬피 우는 이가 있습니다. 육신이 회복될 수 없는 상태일지라도 자기 자신은 완전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반면에 육신과의 동일시에 지나치게 빠져 있지 않았던 이들은 훨씬 쉽게 육신을 떠납니다. 그리고 평소 육신을 미워했던 사람은 이상한 일이지만 사후에 오히려 그것에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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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삶에서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접할 수 있는 현실 영역에서 특정한 데이터, 즉 자신의 현실관에 따라 주의 깊게 선택된 자료를 지각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인식 데이터를 창조하는 셈이죠.

스스로 모든 사람이 사악하다고 믿는다면 여러분 스스로 선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려 인간의 선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항상 최악의 측면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도록 텔레파시를 보내며 스스로 그런 혐오감을 그들에게 투영합니다.

바꾸어 말해 여러분은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후체험과 꿈 체험, 유체 이탈 체험도 마찬가지죠. 성악설에 집착한다면 사악한 상태와 마주치게 되며, 악마를 믿는다면 그런 존재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의식이 육체를 벗어나면 커다란 자유를 누리게 되고 생각과 감정은 지체 없이 현실화됩니다. 그러므로 악마를 만나리라고 믿는다면 스스로 그런 사념체를 창조하게 되죠.

자신의 의식이 육체적 삶의 죄악에 집중되어 있다면 아직 내면의 탐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태에서도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속한 사념체를 만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악마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 해도 받지 않고 사후 현상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사념체라면 그것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가 무엇인지 자문해 봄으로써 자기 학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죠. 사후에도 그와 동일한 환각에 빠져 영적 전투를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좀더 깊이 이해한다면 그런 전투는 필요 없을 테지만 말이에요. 결국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이 이해하는 수준에 따라 관념을 구체화시키고 문제나 딜레마를 풀게 마련입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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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온갖 설명이 주어집니다. 그곳의 존재들은 자신이 죽어서 사후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실상을 설명해 주고, 그들의 에너지와 정신을 새롭게 바꾸어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바로 이 영역에서 모종의 정신적 장애에 부딪힌 퍼스낼리티들은 육체의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게 됩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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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시기는 전환기에 처한 개인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참다운 상황을 깨닫는 데 좀더 시간이 걸리죠. 또 어떤 퍼스낼리티는 장애가 되는 수많은 관념과 상징을 버려야만 합니다. 선택은 즉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오랫동안 유보된 채 훈련 과정이 계속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개개인이 품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어떤 상태에서는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믿음이 그와 같은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죠. 어떤 이들은 일, 발전, 도전에 대한 관념을 거부한 채 기존의 천국과 같은 상태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당분간 그런 환경 속에 살 수도 있겠죠. 존재 자체가 발전을 필요로 하며 천국은 무익하고 진절머리가 날 만큼 지겹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배울 때까지 말입니다. 그들은 그후에야 선택할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그 믿음의 힘으로 인해 실제로 얼마 동안 그런 상태를 경험하게 되죠. 어떤 경우이든 간에 스승은 있게 마련이며 그는 여러분의 잘못된 믿음을 뜯어고치기 위해 애씁니다.

지옥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좀더 빨리 제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들의 두려움 자체가 내면에서 해답을 이끌어 내는 것이죠. 다시 말해 그들의 절실한 필요성은 앎에 대한 내면의 문이 좀더 빨리 열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천국의 상태보다는 지옥의 상태가 더 빨리 끝나죠.

하지만 어떤 상태이든 간에 선택이 유보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어떤 경우이든 개개인은 스스로 체험을 창조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는 까닭은 이 원리야말로 모든 의식과 존재의 근본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후의 특별한 장소나 상황, 상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살자라도 특정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의 상태가 특별히 더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 역시 정상적으로 대우받게 되어있죠. 물론 현생에서 다루지 못한 문제를 다른 생애에서 다시 직면하겠지만 이것은 자살자에게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자살이란 본인 스스로 선택한 특정한 조건 하에서의 삶을 거부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 있죠. 이런 경우에 당연히 그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공부를 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면서 자살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체험을 거부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자살과 관련된 조건, 즉 당사자의 내면 사실과 깨달음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자살에는 징벌이 뒤따른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살자가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식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면 죄책감이 관념의 오류를 심화시키면서 진보를 방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스승들이 자살자에게 참다운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이를 위해 다양한 요법이 동원됩니다. 이를테면 퍼스낼리티는 자살하기로 결심하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결정을 뒤바꿀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또한 기억 상실 효과를 유도함으로써 자살 자체를 잊게 만듭니다. 나중에 당사자가 자신의 자살 행위를 직시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사실을 알려 주죠.

하지만 자살이 다른 여러 가지 조건과 마찬가지로 선택을 내리는 데에 지장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조건 중에는 지구상의 관심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자세도 포함되어 있죠. 이런 퍼스낼리티들은 대개 육체적 삶에 자신의 감각 능력과 에너지를 몽땅 쏟아 부으려고 합니다. 이들은 좀체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심령적인 분리 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셈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 퍼스낼리티는 지구상의 일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여 자신의 집이나 주변 환경을 방황하게 되며 자연히 선택의 시기도 미루어집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 제인 로버츠 p14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