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영성, 수련, 철학

[스크랩] 김영우와 함께하는 전생여행 (2)

물레.방아 2018. 11. 15. 18:34

여덟 번째 만남 : 동물의 영혼, 사랑,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UFO. 정신병의 원인

여덟 번째 퇴행에서도 전생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김 :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원 : 브란덴부르크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김 : 또 뭐가 있나요?
원 : 보이는 것은 없고 '사랑하는 자여'라는 말이 들립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늘 듣던 목소리보다 더 높은 존재의 목소립니다. 자기 안에 우주를 품으라고 말합니다.

 

김 : 사랑의 뜻인가요?
원 : 사랑보다는 예언의 뜻이 느껴집니다.
김 : 제3의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원 : 들어왔습니다.사람들이 왔다 간 것이 느껴집니다.
김 : 오늘 볼 내용은 뭔가요?
원 :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김 : 그 방은 어떤 모습입니까?


원 :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상징적인 것입니다.도서관과 같은 모습입니다. 
     두터운 책들이 있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려고 있는게 아니고 사람들을 어려움에서 구해내기 위해 있습니다.


김 :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들립니까?
원 : 대답은 들리지 않습니다.
김 : 질문을 해볼까요?
원 : 네.


김 :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습니까?

원 : 동물도 영혼이 있지만 사람의 영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맹목적인(?) 작용처럼 보입니다. 

     사랑의 흐름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같다고 하지만 차이점은 동물적 사랑은 하나의 경향입니다.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경향들은 감정의 움직임대로 가게 되지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그게 아니라,하나님과 영과의 교감을 통한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사랑이 좀 저급한 것이라면,하나님의 사랑은 최상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생명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성간의 교합 가족간의 결합만을 뜻하는게 아니라,이 우주의 주된 흐름이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우주 안에 있는 순수한 에너지와 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사랑함으로 우주에 있는 에너지를 소유하고,그 영혼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지고 있는 신비 중의 하나는,사랑을 할 때에 사랑받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욱더 큰 힘을 얻게 되어 내면적인 성숙이나 개인적인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는 것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적 차원의 사랑에 머물게 됩니다.

     즉 타고난 경향대로의 사랑, 생존본능에 근거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또한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엄밀하게 보았을 때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그 마음도 사랑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일부 얻을 수는 있습니다.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무조건 동물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

     감정이 앞서는 사랑들은,그 대상을 사랑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생존 목적을 위한 사랑을 하게 되지만....... 

     아 너무 많은 메시지들이 쏟아져 들어와,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침묵한 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그 사람의 영혼을 보지 못하게 되면, 그저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맹목적인 의무감이 그를 충동질 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서 왜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될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동물적인 감정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사랑입니다. 왜 부모들은 자녀가 더 잘되고, 더 성취하기를 원할까요? 

     그것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왜 사람들은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하고,

     출세를 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기반이 확고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본질적인 힘을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은 생존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완전해 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힘들거나 다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존이 우선되어야 하기에 타인의 생존을 밟아서라도 자신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법칙은,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거나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강한 어조로) 소유함으로 얻는 것은 다분히 현상적인 것입니다.진리의 본질은,자기를 내어놓음으로써 

     자기 안의 악한 기운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워진 만큼의 우주의 선한 기운을 자기가 받아들여 

     자신의 영혼이 더욱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동물적으로 사랑하는 자도 줄 수 있지요.이런 저차원적 개념의 사랑도 안아줄 수 있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적 관점의 사랑의 차이점은,그것이 의례적이고,찰나적이고, 자기만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리에 부합되는 사랑은,생명을 살리며 영원하며,영속성이 갈수록 빛을 더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딴 사람을 사랑할 때,에로스적인 사랑이든 아가페적인 사랑이든 왜 사랑해야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에로스가 주류가 될 때는 실상은 자기만족적인 사랑이 됩니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실망만 남는 것이지요.왜냐하면 자신의 생존영역을 서로의 사랑을 통해서 확인받고 

     확인해야 하는 건데,그렇지 못할 때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로스적인 부부사랑은 갈등으로 대립되고, 그 갈등으로부터 다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암묵적 휴전과 묵시적 경계를 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것으로 서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에서 부부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서로 영혼의 발전을 위해서 기뻐하게 되고 우주의 

     근본적인 흐름속에 자신이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우려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가 있고 상대방이 확장되므로, 내 안에 있는 우주적 기운을 나를 통해서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의 부부사랑은 끝없이 끝없이 사랑의 자기 지속성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런 관점으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겉치레나 위선이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된 모습 없이도 

     서로가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우주의 기운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집니다.자기만족적인 사랑으로 자녀를 대할 것이 아닙니다.

     (잠시 침묵한 후)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오는데 마음이 조금 불안해져서 어렵습니다.

 

김 : 긴장을 풉니다.
원 : 부부는 진정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상대방 한테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 
또한 만족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받은 상처 때문에 그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냥한 미소 속에 차가운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담기게 되고,미소를 지으면 지을수록 상대방으로부터 

     멀어지는 서로의 모습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뜨려야 됩니다.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기운이 교감되면서 차가운 기운으로 뭉쳐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공통된 것입니다.우주적 관점에서의 사랑의 원리를 생활에 적용시키십시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와 카르마(karma)는 자신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김 : 그는 여기까지 얘기한 후 잠시 긴장을 풀고 쉬었다. 잠시 후 다시 계속된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메시지였다.

원 :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을 옭아맨 운명에 대해서 느끼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존 F. 케네디는 심령술에 관심이 많았고,진정한 카톨릭 신자는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잠시 침묵한 후) 후루시초프와 케네디간에 비밀협상이 있었습니다.


김 :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까?
원 : (속삭이듯) 그렇습니다.


김 : 어떤 내용입니까

원 : 후루시초프는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케네디도 드러나지 않게 미국을 움직이는 세력으로

     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를 더욱 긴장으로 몰고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둘 사이는 서로 교감이 있었고 후루시초프가 유엔본부에서 구두로 바닥을 친것은 정치적 쇼였습니다.


김 : 케네디의 죽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원 : 케네디의 죽음에는 많은 집단이 관련되어 있어 누가 범인이라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스왈드는 억울한 희생양에 불과하죠.케네디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 범인은 보수세력인가요?

원 : 그렇습니다.그 사람들은 케네디가 자신들에게 한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디는 누구의 손에 죽을지는 몰랐지만,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루(힌두교의 성자)였습니다. 현생한 구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네디가 죽었을 때 후루시초프는 무척 슬퍼했다고 합니다.그 가 권력에서 쫓겨난 것은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소련보다 미국이 먼저 망했을 것입니다.


김 : 전쟁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요?

원 : 아뇨.체제경쟁에서 미국은 소련에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 클린턴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 : 그는 조작된 이미지의 총합입니다.

     그 사람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없었고 집단에 의해 조종받는 꼭두각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삭이듯)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김 : 그런 꼭두각시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에 케네디가 죽은 것입니까?

원 : 케네디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배후에 가려진 인물들입니다.그것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시스템의 문제입니다.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전쟁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뒤에서 조종되고 있습니다. 

     트러스트'라는 글씨가 보이고 250 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뉴욕시의 모습이 보입니다.그냥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ooo씨가 될 거라고 하지만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지도자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함) 다음 대통령은 ooo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앞의 정치지도자의 이름을 댐). 그러나,이것을 자신있게 말하기가 두렵습니다.


김 :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원 : 교활한 사람이지만,한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김 : 지금의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 : 강력한 신념의 소유자입니다.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면과 가려진 면이 다릅니다.

     (30초 정도 침묵한 후) 더 이상 정치에 대해서는 얘기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 : 긴장을 풀고 편안히 휴식하십시오.(깊은 이완과 함께 머릿 속의 영상을 지울 것을 지시하고 잠시 기다림)
원 : 파키스탄에 대한 인도의 핵 사용은 억제되어야 합니다.
김 : 그들이 정말 핵을 사용하려고 합니까?
원 : 위험성이 높습니다.


김 :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어떤가요?
원 :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국지적인 전투가 될 것입니다.

       등소평의 사망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교석'이라는 이름이 떠오릅니다.

      강택민의 권좌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습니다.


김 : 교석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원 : 그렇습니다.그러나 그 사람이 후계자가 된다면 쟁취하는 형태가 될것입니다.

     강택민이 통치하게 되면 중국은 하나로 유지되지만,교석이 통치하게 되면 중국은 두 개로 나뉘게 됩니다.

김 : 어떻게 나누어집니까?
원 :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나누어지면서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됩니다
     남중국은 상해파가 지배하고, 북중국은 북경파가 지배하게 됩니다.북중국이 먼저 무너질 것 같습니다.


김 : 인도의 장래는 어떻습니까?

원 : 무척 밝습니다.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국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김 : 그들의 정신적 에너지가 빛을 발하나요?
원 :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지만,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김 : 티벳은 독립할 수 있습니까?
원 : 네. 20년 후에는 독립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역주-2016년 1월 현재에도 독립이 안된상태)


김 : 다른 우주에도 생명체가 있고 우리는 그곳으로도 태어날 수 있습니까?
원 : (엄숙한 어조로) 그 문제는 아직 얘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김 : UFO(미확인 비행물체)는 실제로 존재합니까?
원 : 네. 그렇지만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닙니다.


김 : 만성 정신분열증에 걸려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는 환자들은 나을 방법이 없습니까?

원 :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원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과도한 에너지 사용으로 인해서 그 기능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두 번째는,악한 영들에 의해서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치료되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악한 영들에 의한 것이고,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뇌 속의 시스템이 붕괴되기 때문에 회복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과도한 정신에너지의 사용은 실제로 몸 안에 있는 신경세포들의 미세한 연결점들을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과부하가 걸렸을 때 전선이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끊어진 사람은 치유가 안 되지요.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도 회복시킬 수 있는 의학이 나올 것입니다.


     정신질환자들의 대부분의 증상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나타난 것들입니다.

     이제 그들의 닫힌 마음들을 열어주는 치료법이 개발된다면,그들은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 말씀드린 몸의 진동수 조절 같은 방법들로 나중에는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 강력한 악령에 의한 경우에는 방법이 없습니까?
원 : 그런 악령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김 : 환자 스스로 인식하는 사랑입니까?
원 : (단호하게) 아닙니다. 주위에서의 사랑과 선한 기운이 악한 기운을 몰아낼 때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김 : 가족과 의료진의 사랑과 정성이 그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원 : 아닙니다.그러한 사랑이 아니라,우주의 진리를 포함한 사랑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김 : 그런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 : 네.예수가 행했던 것처럼,그런 삶은 사는 사람들이라면 능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
원 :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드러날 것입니다.

김 :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있습니까?
원 :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원하며 다가올 때를 대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김 : 우리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들입니까?
원 : 당신이 마음을 연 만큼 부합하게 될 것입니다.


김 : 심령과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원 : 심령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허상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허상이란 비실재적 허상이 아니라,실재하는 악한 영들입니다.악령들이 다른 형태로 가장해서 

     나타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단호하게) 그 가운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심령과학에서 가장 큰 맹점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우주의 근본적인 에너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런 고차원적인 사랑과 자비가 필요합니다.그것없이 영적 현상을 다루면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김 : 오히려 악령의 지배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원 : (강하게) 그렇습니다.악령도 강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지만,악령과 선한 것의 차이는 영혼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그리고 우리가 이런 혼란의 시대에 알아야 할 것은,악령들의 세력도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는 방법은,실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위선된 사랑과, 진실된 사랑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가르침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삶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김 : 사랑했던 죽은 이들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원 :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을 더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김 : 전생요법은 어떻습니까? 선한 것인가요?
원 : 대단히 미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기법 자체가 선하고 악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것이 될 수도 있고,악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행하는 것은,방법도 선하게 흐르게 되고 악한 사람이 행하게 되면,그 흐름도 악하게 되겠죠.


김 : 환자를 돕겠다는 순수한 사랑으로 행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원 : 굳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 다른 모든 치료는 뒤편으로 미뤄놓아야 되겠군요?
원 :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김 : 골드버그 같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골드버그는 미국의 치과의사로, 수만 건의 전생 퇴행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원 : 부족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겸손함이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제 상태가 명쾌하지 않습니다.쉬어야 되겠습니다.


김 : 긴장을 풀고 깊이 휴식하십시오.머리에서 모든 영상과 정보들을 지웁니다.잠시 쉰 후 상태를 보겠습니다.
원 : (20초쯤 쉰 후) 눈앞에 주걱의 그림이 보입니다.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오늘은 그만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고 ' 아카식 레코드'의 방으로 들어간 점은 지난번과 같았다.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기들은 전적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존재들이 결정할 문제였다. 

그러나 이들은 친절하게도 나의 질문들을 이번에도 받아주었다.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이 문제는 동물 애호가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이다.

나 역시 사랑하는 동물과는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귀가한 주인을 너무 반가이 맞이하는 

강아지의 흥분을 보며 미소짓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고대의 환생론에는 인간이 다음 생에서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이 있으니,당연히 궁금할 것이다.


영혼의 진화와 깨달음을 위한 성장 과정이 윤회라는 틀과, 업이라는 법칙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오랜 영혼의 진화과정에서 우리는 한 때 동물이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의 영혼도 나름대로 진화해 나간다는 사실은 인도의 수행자인 요가난다Yogananda의 경험에서 흥미롭게 

읽은 일이 있다.어느날 요가난다의 어린 제자들이 아끼는 작은 사슴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그 사슴이 살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하였다.

 

어린 제자들의 간청을 못 이긴 요가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장시간의 기도를 했고,

얼마 후 사슴은 소생하는듯 보였다. 그러나 그가 기도에 지쳐 잠시 졸았을 때 꿈속에서 그 사슴의 영혼은 

그에게 '저는 이제 한단계의 진화를 위해 가야 합니다. 제발 저를 붙잡지 말아주세요.하고 애원하였다.

가야 했지만 그의 간절한 기도에 사슴의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자기의 입장에서만 뭔가를 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음 생에서 짐승으로 태어나기도 하는가? 

지혜의 목소리들은 동물의 영혼과 사람의 영혼의 차이를 얘기한다.

神과 교감하는 인간의 영혼은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동물의 영혼보다는 높다는 것이다.


한 생애에서의 잘못으로 갑자기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은 하나의 비유로 해석된다.

다음 생에서 돼지가 된다는 것은 돼지 같은 속성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고,

개가 된다는 것은 개와 같은 속성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가? 

윤회에 대한 많은 자료와 가르침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이 거듭되는 삶을 통해 계속 퇴보한다면,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큰 결점과 고통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 그 업의 법칙에 따라 대가를 치르고 다시 앞으로 진화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지혜의 목소리들'도 인간의 영혼은 처음부터 동물의 영혼과는 다르게 창조되었다고 얘기한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이 책에 소개하지 못한 가르침 속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들은 동물의 윤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동물은 인간처럼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고,또 불교에서 말하는 동물로의 환생은 상징과 비유이며 교훈적 목적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전생 퇴행 과정에서 자신이 동물이었던 삶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있다면,그것은 실재했던 삶이 아니라 

상징으로 나타난 가공의 삶이라고도 말해주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기억하는 경우는 모두가 실제로 있었던 생애지만 상징성을 띤 가공의 생애가 아주 드물게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런 경우는 실재했던 삶과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동물로의 환생에 대해 언급한 힌두교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古代의 마누법전은, 

'이성적 영혼은 동물의 몸 속으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 천한 인간은 감각적 욕망의 삶에만 빠져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천한 몸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종교의 모든 경전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경전의 해석은 文字 그대로가 아닌 상징적 차원에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동물로의 환생 얘기도 그렇게 이해한다면,인간은 각자의 카르마에 따라 각종의 동물같은 정신적 특징이나 

성격을 지닌 채 인간의 형태로 계속 윤회하게 된다는 것이다.예를 들면 탐욕스러운 성품은 돼지의 이미지로,

교활한 성품은 뱀으로 상징된다는 것이다.외국의 많은 전생 퇴행 사례 중에서 동물로의 환생을 보고한 사례는 

아직 없었고,나 역시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동물적 사랑과 우주적 사랑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우리의 삶속에서의 수많은 만남과 그 만남들로 부터 씨뿌려지는 

기쁨과 슬픔,증오와 절망 등에 대한 좋은 해답이다.부모와 형제,아내와 남편,자식과 부모,친구와 동료,

그리고 나의 적들.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간관계는 이구도 속에 담겨 있다. 만남을 피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나쁜 만남은 우리를 한없이 피곤하게 만들고 슬프게 하는 것이다.


자기 만족이 아닌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지혜의 목소리들은 가르친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받는 자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기쁨을 얻는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겨운 얼굴로 신혼여행을 떠났던가? 

꿈에도 그리던 행복의 순간들이 이제는 눈앞에 영원히 펼쳐진 것 같은 때가 바로 이때일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감에 따라 현실은 사정없이 두 연인을 흔들어,그 고달픔과 피곤함 속에서 서로에게 소홀하고 냉정해져 

결국은 마음을 닫고 남이 되어 버린 부부가 또 얼마나 많은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묻고 있지만 그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유별나게 잘못 만난 부부도 많다.

 

내 눈에 뭐가 씌어서 그런 인간과 결혼했다.

그가 죽어야 내가 편할 것 같다.

단지 애들 때문에 같이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 게 정신과 의사다. 

일방적으로 억울하게,부당하고 잔인한 대접을 받는 아내나 남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는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자기 욕심의 만족에 상대방이 협조 안하기 때문에 그가 섭섭하고 미워지는 것이 진짜 이유다.

순수했던 남녀가 결혼만 하고 나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변해 재산 불리기와 출세하기에만 급급해지는가? 

물질문명은 사람들 마음속에 물질에 대한 집착만을 심어주어 강력한 욕심을 만들어놓았다.


물질을 소유하듯 상대방의 헌신을 소유하려 들고 지위와 특권을 소유하려 드니 기대가 커지고 실망도 커지며 

결국은 불행해지는 것이다.두 사람의 결혼의 목적이 내집 마련과 재산 불리기가 되고 남보다 잘사는 것이 된다면,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그 가정의 자녀는 당연히 그렇게 훈련될 수밖에 없다.


욕심을 버리는 일은 인간적 차원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왜 욕심이 덧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답이 없는데 누가 욕심을 버리고 상대를 사랑하겠는가? 

욕심과 집착이 뜬구름과 같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불행과 슬픔들이 기다리고 있다.

진정 위대한 스승인 이들은 한때 내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을 내 품안에서 순식간에 빼앗아 가고 만다.

 

뭔가를 가졌다는 것이 별게 아니라고 깨달으면 욕심은 자연히 설 땅을 잃는다.

더 많이 주어지면 즐겁기는 하겠지만,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만큼의 매력은 없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 우주적인 사랑이 가능해지는 것은,현실에 대한 실망의 극복이 제대로 이루어진 다음이다.


실망을 극복하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것들을 찾아 나섬으로써 진리와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적인 사랑은 예수가 강조한 사랑,부처의 자비심과 같다. 그들의 가르침은 종교라는 그릇 속에서 

잘못 해석되거나 독선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종교라는 시스템이 불완전한 것이다. 종교는 기본적으로는 깨달음과 선행을 가르치지만,

사람들이 만든 창조물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모아 가르침을 전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려면 종교와 같은 
조직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해진다.

조직이라는 것의 가장 큰 약점은,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그 조직의 유지를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그 종교 본래의 목적은 약해지고 조직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종교의 훌륭한 가르침은 인정하면서도 종교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오랜 세월 심어져온 

종교의 독선적 태도와,진리를 독점한 듯한 교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입으로는 온갖 아름다운 언사를 늘어놓으면서도 실상 자신의 삶은 정반대인 사이비 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업상 발을 넓히기 위해서 종교모임에 나가고 정치적 지지자들을 찾아 종교를 갖는다면, 교회나 사찰은 

영혼의 성장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는 본래의 목적과는 아무 관계 없는 집단사교장이 되고 만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보는 현대인들은 어떻게 순수하게 종교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는가?


종교에서 조차 사랑과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
사회의 모습 안에 

모두 담겨 있다.돈 때문에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자신의 좌절감을 극복 못해 남들을 괴롭히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사회 속의 모든 병리적 현상의 원인은 결국 불행한 사람들에게 있다.


진정한 사랑을 한는 사람들은 불행할 수 없으니,우주적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고 모든 것을 살린다.

정치인들의 숨은 얘기와 미래에 대한 예언들에 대해,나는 논할 생각이 없다.현재로서는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적인 추론과 상황 분석을 해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최면상태에서의 예언으로 유명한 에드가 케이시나 폴 솔로몬의 능력과 유사한 것을 
이 젊은이가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예언을 제외한 다른 문제에 대한 '목소리'들의가르침과 통찰이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에,

이들이 주는 정보는 사실일 것으로 나는 믿는다. 다만 미래란 과거처럼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것을 

어느 예언자들이나 인정하고 있으니,미래 예언은 귀담아 두되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케네디의 죽음은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다.조사 자체가 비밀로 분류되었고,오스왈드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들과 증인들의 진술은 모두 성급히 묵살되었다.

단순한 살인사건도 답답할 정도로 오래 끄는 미국 사법제도의 관행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간디는 보통 정치지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성자와 같은 그의 인품에 온 세계가 감동했었고,

아인슈타인이 죽었을 때도 '이처럼 위대한 인간이 존재했었다' 는 사실을 후세인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정말 환생한 구루(힌두교의 큰 스승)였다면,그의 정신적인 큰 힘도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던 날 아침,그는 손녀에게 중요한 서류를 모두 가져오도록 시키며, 

'오늘 다 서명해야 한다.내일은 없으므로'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여기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모택동의 사망을 둘러싼 비밀, 마릴린 먼로의 죽음과 그 배후,

또 김일성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에 대한 얘기들이 이어졌다.

심령과학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영매나 무당들의 한마디가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이들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지혜의 목소리들'의 대답은 평소의 내 생각과 같았다.


몇 해 전 나는 심령과학에 관해 수많은 저서를 발표한 한 유명인사를 만났다.

그는 책에서 주장하기를,대부분의 질병이 악령에 의한 것이며 자신의 방법을 쓰면 질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졌다. 만약 그의 방법이 단 한명의 환자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그의 주장을 확인하지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비과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났을 때 받은 최초의 인상은 '머리가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많은 이론과 업적들을 늘어놓았다.그럴듯한 이론과 주장들이 꽤 있었지만, 나는 실망했다.

너무나 잘난체 했고,자기 이론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계의 최고신이 자기의 부탁은 다 들어준다며 마치 절친한 친구를 자랑하듯 했고, 

그 최고신이 깨닫지 못한 것을 자기가 가르쳐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 하더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했다. 

결국 이 사람은 진실이 없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판단을 하고 돌아 온 경험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이 안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많은 사람들응 점을 치러가거나 신통한 사람을 찾는다.

내 환자들 중에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단순한 불안증세를 귀신의 장난으로 믿고 굿을 해야 한다며 수백만 원을 쓰는 경우도 보았지만,그런 환자들은 

어김없이 내게 돌아와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제대로 받고서야 호전되었다.설사 누군가가 신통력이 있다 해도 

그걸 확인할 길이 없으니,함부로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른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선한 의지와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서 영혼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런 관심과 호기심을 따라가면, 잡다한 귀신들이 모여들게 되어 그 악령들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최면상태에서 사람들은 영혼의 세계,혹은 초월적 세계와 연결이 잘 된다. 

고급령들의 목소리를 듣고,예언과 투시의 능력이 생기기도 한다.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 불가능했던 일을 해내는 

것이다.전생 퇴행이라는 방법은 과학적인 최면 이론에 따라 이루어지지만,그 과정에서 고급령들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다른 신비로운 경험들을 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해 전생 퇴행은 하나의 최면 테크닉에 불과한데,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아직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그러나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반복되는 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전생 퇴행이 지니는 치료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고 많은 환자들에서 확인되고 있으니,정신과 의사들은 이 현상을 

연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정신과학이야말로 영혼과 육체를 다 같이 다루는 학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학은 생명을 화학작용으로만 인식하려는 유물론적인 의학 분야와는 달라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심리학적인 이론에 두드려 맞추려고 하거나 약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단순한 연령 퇴행에서 고급령들의 목소리들 듣거나 한 경우는,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으로 넘어가면 영적인 현상들을 만나게 된다.

현생의 아는 얼굴을 알아보고, 죽은 후에는 그 생애의 의미까지도 스스로 해설한다. 

그렇다면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우리의 영혼 자체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미국의 한 전생퇴행치료자는 잠재의식,초의식,영혼이라는 말들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잠재의식의 실체는 곧 영혼이란 말인데,그렇게 생각하면 잠재의식이 지배하는 최면상태에서 

왜 영적인 현상들이 자주 일어나는지 이해가 간다.그렇다면,악한 의도를 지닌 최면 시술자가 환자를 전생으로 

퇴행시켰을 대는 고급령들 대신 악령들이 간섭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점이 궁금해 전생요법에 대해 물어보았다.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대답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치료자의 선한 의지와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행하기는 하되 신중하게 판단해서 꼭 필요하면 하라'는 것이다.'어떤 스님이 내 전생은 이러저러했다고 

하더라','점집에 갔더니 내 전생에 대해 말해주더라'하는 얘기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시큰둥하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생 퇴행의 놀라운 점은, 자신의 전생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장면들의 인상은 참으로 강렬하여,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각각의 환자들이 첫 퇴행 후에 보이는 반응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결같이 놀라고 반신반의하며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닐까요?' 하고 반문한다.그러나 回를 거듭할수록 확신과 

이해가 커진다.이 방법이 단순히 환자들의 호기심만을 만족시킨다면 의학적으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약물치료나 정신치료가 해결 못하던 환자들이 

낫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전생 퇴행을 통해 좋아진 환자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자신이 본 것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전생의 기억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죽음후의 기억들은 인상적이어서,책에서 읽었던 임사체험자들과 똑같은 기억들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지며,자신의 인생을 영원한 것으로 보기 시작한다.해결되지 않던 현생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전생의 경험들 속에서 발견하면, 그 증세들은 대개 즉시 호전되기 시작한다.

원종진 환자도 중국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첫 퇴행 후에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이들이 그 기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그것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상상조차 한 일이 없는 기억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떠올라오고 

그에 따른 감정의 흐름까지 느껴지니,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억해낸 과거의 생애와 현재 생애와의 유사성도 많은 부분에서 발견된다.성격이나 재주,주변인물들과의 관계 

등도 원인을 찾을 때가 많다.이때 치료자는 강렬했던 전생의 기억들로 부터 환자들을 보호하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된다.어떤 기억들은 너무나 괴로워 다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고통을 느낀다. 

 

이런 경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경험있는 치료자의 인도다. 환자로 하여금 어떤 강렬한 체험도 편안하게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자의 할 일이다. 경험이 없는 치료자는 준비작업 없이 환자를 두려운 기억 

속으로 내몰고 그 결과 환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그러니 최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전생 퇴행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목소리들은 우주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고,UFO의 존재는 시인했지만 말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이때 받은 인상은,때가 되면 얘기해줄 것이란 느낌이었다.다음 질문은 만성 정신분열증에 대해서였다.

이것은 정신질환 중의 암과 같은 것이다.여기에 대해서 목소리들은 몇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파괴된 신경계와 악령의 작용이 원인이고 미래에는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도 얻었지만,현재로서는 별 방법이 없다.

고질적 정신병의 원인 중에 악령도 있다는 것은 에드가 케이시도 수차 말한 바 있다.

반복되는 악령의 얘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은 유쾌하지 않다.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과학은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홉번째 만남 : 이집트에서의 삶과 지옥,사랑과 겸손,자기만족.


아홉번째 퇴행에서 그는 오랜만에 또하나의 전생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김 : 어디에 있습니까?
원 : 이집트입니다.
김 : 뭘 하고 있나요?
원 : 현장을 감독하고 있습니다.피라미드를 건축하고 있어요.
김 : 편안한 마음으로 긴장을 풉니다.뚜렷하게 보일 것입니다.
원 : 저는 부역자들을 부리고 있는 감독관입니다.

     키는 180에서 190센티미터 정도고 나이는 40세 정도.제가 채찍질해서 때린 사람이 있는데, 바로그 사람은 

     최근에 저를 무척 괴롭혔던 직장 상사입니다.


김 : 현재 직장 상사란 말인가요?
원 : 네.저는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김 : 당신 이름은 뭡니까?
원 : 오라켄테, 이디오피아에서 온 것 같습니다.
김 : 피부가 검습니까?
원 : 검은 편입니다.
김 : 그때는 언제입니까?
원 : 기원전 4세기 무렵입니다.
김 : 당시의 파라오는 누굽니까?
원 : 그때는 파라오가 아니고 귀족인 것 같습니다.
김 : 귀족이 지배했습니까?
원 : 지금 제 기억 속에는 어떤 파라오의 무덤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귀족의 개인적인 건축물을 짓는 것입니다.
김 : 어떤 건축물인가요?

원 : 성을 쌓는 것 같기도 하고 집을 짓는 것 같기도 합니다.저는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높은 지위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고 윗사람들한테만 잘 보이는 사람입니다.


김 : 가족에 대해 말해보세요.
원 : 아내가 있고 상당히 수동적인 사람입니다.아내 외에도 애인이 있는데 두 사람 다 놓치기 싫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정적이지도 않고,애인을 깊이 사랑하지도 않습니다.저는 난폭한 성격입니다.


김 : 현장을 감독할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원 : 사람들을 심하게 부려서 건물을 빨리 짓고 싶어합니다.
김 : 어떤 건물입니까?
원 :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기둥들이 보입니다. 도서관인 것 같기도 하구요.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지금의 지배자들은 이집트 본토 사람들은 아니구요.그리스 사람들입니다.

김 : 그리스인들이 지배합니까?
원 : 기득권은 그 사람들이 잡았지만,그 사람들도 이 지역에 많이 동화된 사람들입니다. 

     조상은 그리스인이지만 실제로는 이 지역 사람이나 다름 없습니다.


김 : 그 생애에서 다음의 중요한 사건으로 가봅시다.

원 : 저는 윗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치부를 했고,물질적으로는 그렇게 쪼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분에서 오는 불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한 사람이 충고했었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제 마음 가운데 원하는 것은,좀더 고귀한 신분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공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주기를 두려워 말라'는 말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김 : 목소리들입니까?
원 : 그렇습니다.


김 : 그 생애의 죽음의 순간으로 가봅시다.
원 : 네.칼에 찔려 죽었군요.
김 : 몇 살입니까?
원 : 마흔한 살,또는 두 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 누구에게 죽었습니까?
원 : 제가 굉장히 괴롭힌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원한을 가졌습니다. 
     지금 저를 아주 어렵게 했던 그 직장 상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김 : 지금 그 상사와의 관계는 계속 좋지 않습니까?
원 : 네.그렇지만 그렇게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김 : 그가 칼을 가지고 덤벼들었나요?
원 : 덤볐다기보다는 뒤에서 기습을 했습니다.
김 : 죽음의 순간을 넘어갔나요?
원 : 지금은 담담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 허파를 찔려서 숨쉬기가 어려웠고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등도 여러번 찔렸습니다.


김 : 그 사람을 어떻게 했었나요?
원 : 그 사람을 채찍으로 때렸을 뿐만 아니라,재산도 가로채고 딸도 빼앗아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 했기 때문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었습니다.

김 : 그 사람은 그 일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겠군요?
원 : 네.그래서 나를 죽일 기회를 엿본 것입니다.'네가 죽을 때'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김 : 죽은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원 : 제가 채찍을 맞았습니다.

김 : 지옥인가요?
원 :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 그곳에서 채찍을 맞았나요?
원 : 네. 제가 괴롭힌 것보다 훨씬 더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김 : 그 괴롭힘을 당하면서 깨달은 게 있나요?
원 : 그때는 일단 너무 괴롭다는 생각분이었는데 뚜렷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김 : 그 생애에서 배운 것은 뭡니까?
 

원 : 너무 많은 것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부족한 것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들입니다.
김 : 그 생애의 기억을 지우고 그대로 휴식하십시오.(잠시 깊이 휴식할 것을 지시함)


쉬는 동안 여러 가지 영상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뚜렷한 정보와 목소리들은 없다고 했다. 

웬일인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따라,최면상태에서 깨운 다음 다시 유도했다.


김 : 긴장을 완전히 풀고,목소리나 영상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원 : 역사상의 모든 사회 변화의 원인은 자기존재의 확인과,보장과 보호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혁명이나 제도 개선 등의 모든 것은 자기의 생존영역들을 확장시키려는 마음으로부터 출발됩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한 번도 혁명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그러한 출발이 첫째로는 이기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고,둘째는 진정한 변화의 참뜻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유민주주의와 북구의 사회민주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혜택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기득권으로서의 자기위치를 보장받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내놓은 기만술책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개혁정책이나 이념들은 결국에는 더한 타락에 빠지게 되고,한쪽의 사람들을 더 어렵게 

     합니다.이때까지의 개선사항이라는 것은,사회제도나 사회보장면에서 하나의 제로섬게임

     (zero-sum game :득실의 합계가 항상 0이 되는 게임,즉 얻은 게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한쪽의 희생을 바탕으로 서 있는 사회보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사회보장마저도 사람들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바로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며 

     그런 영적인 부분들에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진정한 개혁이란,내가 잘되려 하는 개개인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려는 각자가,자기가 보호받는 영역을 버리고,자기가 누릴 수 있는 영역을 떨쳐버리고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그러한 마음이 확산 될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러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회변화는 사회제도나 모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타적인 마음들,

     또 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마음들을 서로 나눠가지는 데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변혁은 일어날 것입니다.

     보십시오.역사를 통해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보호받기를 원하고,많은 법과 제도와 조직들이 바뀌었지만,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고, 

     다만 그 형식과 소유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그러나 그 소유마저도 모두 다 허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누려본 사람들은 더 깊은 심연의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모든 사회가 누려왔던 부나 지식이나 제도들은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인간들에게 궁극적인 해답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관점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큰 것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작은 것부터 나누는 훈련이 있어야 됩니다.

     영혼을 바라보는 사람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것들이 내려지게 됩니다.

     나의 영역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내 영역을 나누고 내 영역 안에 많은 사람들을 품을 때에,그런 움직임들이 

     확산될 때에 진정한 사회변화는 이루어집니다. 여기까집니다.

 

김 : 그 목소리들인가요?

원 : 네.다시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소유하면서 기쁨을 누린다'고 하고,'여자는 확인하면서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기쁨은 만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끝없이 소유하려 하고 여자는 끝없이 확인하려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또 다른 메시지가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실타래가 엉키듯이 정확하게 풀리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담아줄 수 있는 그릇을 키우라'는 말이 들립니다.그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상대방에게 딸린 기쁨이나 슬픔들이 정말 내 기쁨이고 

     내 슬픔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감정의 공명은 영혼의 공명을 일으킵니다.

     영혼의 공명이 일어날 때 감정의 공명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어떤 유형의 사람들도,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상관없이 영혼의 공명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참사랑을 주는 것은 공감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공감에 영혼의 공명을 함께 이루는 작업을 같이 해나가야 합니다.앞으로의 지도자들은 감정의 떨림에 

     영혼의 공명을 맞춰나갈 뿐 아니라,이것을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뤄나가고 

     그 떨림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될것입니다.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될 것입니다.실력이나 능력이나 다른 재능들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영혼의 공명을 

     함께 하는 자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올것입니다.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물질적으로 타락하는 사람과 정신적인 성숙,영혼의 맑음을 소유한 사람들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타락의 모습을 타락이라고 하지 않고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에도 얘기한 것처럼 우주의 흐름의 방향과 공명하지 못하면 바스러지게 됩니다.

     사람의 능력은 재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공명인 신의 목소리를 담아 낼 수 있는 영혼의 크기에서 

     나옵니다. 자기의 그릇을 닦는 데 주력하십시오.


     예수가 말한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고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은,아이들의 영혼은 쉽게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눈물을 많이 흘리시고 자신의 체면을 돌아보지 마십시오.영혼의 공명 현상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열등한 모습이 됩니다.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결국에는 다른 강한 것들을 이기게 됩니다. 


김 : 다른 메시지는 없습니까?

원 : 제 마음 가운데 긴장과 두근거림이 있습니다.아까 전화벨이 울릴 때 안정이 깨졌는데 계속 두근거립니다.


나는 다시 한 번 긴장을 풀도록 지시하고 잠시 휴식한 후 진행하려 했으나,그는'두려움과 긴장,강한 의무감으로 

진행하기가 두렵다'고 대답했다.주어지는 정보의 덩어리들이 너무 많아,이것을 정확히 풀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 때문에 평정이 자꾸 깨진다는 것이었다.나는 그의 긴장을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습니다.많은 미래가 있습니다.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은 결국 알게 될 것입니다.

한꺼번에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욕심을 부릴 때 집착하게 되고,집착 속에서 안정을 깨뜨리게 됩니다.

마음이 거울과 같이 가라앉아야 수신 할 수 있습니다.주어지는 정보와 가르침을 모두 풀어 헤치는 것은,

집착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어지는 대로 무심히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긴장을 풀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를 더 깊이 유도했고, 잠시 후 우리는 다시 목소리들을 만났다.


원 : '이카루스'에 대해 아십니까?

김 : 네. 계속하십시오.

원 : 제 앞에 그림이 보이는데 글자로는 '이카루스'라고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서 새의 깃을 달고 날려고 했던 

     그 사람이 보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영역에서 이카루스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 : 인위적으로 영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만에 빠진다는 얘깁니까?

원 : 깃털을 다듬고 붙이는 것은 자유지만,그것을 가지고 날려고 시도할 때는 떨어지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행위가 중지되어야 할까요? 깃털을 모으는 것부터 중지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명확히 인식할 때에만 진리를 소유하고 우주의 비밀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데에는 두 세 가지의 부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자기가 신인 양 착각하므로 태양 곁에서 자기 몸을 녹여버리는 자가 됩니다.

     또 한 부류는,원래의 신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신을 쫓아가다가,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그럴듯한 도덕률로 가장하고,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너무나 과신하는 부류입니다.

     (엄숙하고 강한 어조로) 이들은 모두가 실패하게 됩니다.


     모든 영혼은 피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나눔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신의 일부분은 될수 있습니다.그렇기에 신과 유사한 능력과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주로부터 오는 흐름들을 막게 됩니다.

     

     원래의 진리,원래의 신을 왜곡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도 진정한 교류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과신하는 것과.메시지들이 흐려집니다.너무 얕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지금 머리는 맑은데 몸과 의식이 분리되지 않고 있습니다.나는 다시 한 번 깊은 상태로 

     유도한 후 계속하려 했지만 그는 앞의 얘기를 끝맺지 못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코끼리의 배설물을 보면 코끼리의 흔적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큰 사람은 큰 흔적을 남기고 작은 사람은 작은 흔적을 남깁니다.누구를 평가할 때는 그 흔적을 봐야 합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인내를 가지고 그 사람의 영혼에서 그 흔적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흐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된 이미지와 정보를 통해서 자신의 흔적을 크게 남기려고 하지만,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마치 

     배설물이 썩듯이,썩고 마르고 위축되어 흔적도 남지 않게 됩니다.

     코끼리에게서 나온 배설물만이 정녕 코끼리의 것이요,그것이 태양에 썩어져 없어지라도 코끼리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이 메시지의 의미를 목소리들이 제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코끼리가 배설물을 싸놓으면 코끼리가 지나간 흔적임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마르고 부서져서 흔적이 사라지더라도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코끼리가 아닌 것이 자기 허세를 위해 그런 큰 덩어리를 뭉쳐만 놓는다고 해서 자기가 코끼리가 될까요?

 

     자기의 것이 아닌 허상들을 커다랗게 내놓고 자기의 생산능력이 아닌 것들을 거짓으로 내놓는다면 

     시간이 흘러 사라질 때에,결국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코끼리가 

     코끼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보의 덩어리로 나오기 때문에 말을 더 잘 전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걸 만들수 있는 영혼을 소유한 사람일 때는,아무리 많이 생겨나고, 또 잊혀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숨기고 

     부끄러운 것을 감추기 위해서,마치 자기가 그러한 영혼을 소유한 것인 양 이미지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라지고 기억에서 지워질 때는 그 존재의 흔적조차도 남지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왜곡된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서 허탈한 결과를 만들기보다는 

     우리의 영혼들을 그런 수준으로 이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과물을 내놓는 것을 기억하지 마십시오.코끼리는 배설물을 내어놓고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코끼리의 흔적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면들이나 선한 행위의 결과에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허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만일그런 허상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따라오겠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 근원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왜냐하면 그곳에는 코끼리가 아니라 

     쇠똥구리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은 코끼리를 찾으려 하겠지만, 코끼리는 없습니다.

     대신 쇠똥구리가 있습니다.사람들은 코끼리의 배설물을 보고 코끼리를 찾다가 쇠똥구리를 밟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헛된 것을 쫓아가고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만들려 하고 자기를 위장하려고 하다가 

     그만 발에 밟히는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코끼리입니까, 쇠똥구리입니까? 

     쇠똥구리는 덩어리를 작게 만들어 오히려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큰 덩어리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코끼리를 찾아가려다가 그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 그림이 보입니다.개구리가 목젖을 힘껏 부풀려서 끄르륵 끄르륵 울 때,그 소리는 산을 진동시키지만 

     개구리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구리를 모르는 사람이면 호기심을 

     가지게 되겠지요.그 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나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개구리는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울음소리를 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 큰 소리를 내면서 만족할지 모르지만 

     듣는 이들은 그것이 개구리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런 개구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세속의 권력은 장악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내 안에 개구리는 없습니까? 내 안에 쇠똥구리는 없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거품과 영혼의 거품을 걷어내야 

     합니다.내 원래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탓하거나 멸시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개구리요,쇠똥구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직자들이 자기도 코끼리인 양 착각하고 다니지만 결국 쇠똥구리입니다.

     산이 울린다는 것 때문에 자기 울음을 호랑이울음으로 착각하지만 결국 개구리울음입니다.

    

김 : 우리의 성장은 실제로 남들의 영혼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합니까?
원 : 그것은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어느 것이 종속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성장하고,성장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기를 비하 시키는 것이 아니라,상대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존경해야 될 사람을 존경하고,다독거려줄 사람을 다독거리고,내가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겸손이지요.사랑은 겸손을 먹고 자랍니다.그러므로 당신 안에 얼마만큼의 겸손이 있나를 보십시오.

     그것이 자라고 있으면 당신의 영혼은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 : 영혼의 성장과 진리를 찾는다고 자기수련을 하는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기술적인 면과 초능력에 관심을 가지는 것 말입니다.

원 : (단호하게)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을 쫓고 있습니다.여러 방법에 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족을 위해 

     나아갑니다.저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단 몇십만, 단 몇몇만이 진정한 영혼의 성장으로 나아갑니다.

     영혼의 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그 성장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사람들은 얼만큼 성장하는가의 관심으로 돌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여러면에서 변화된 것을 보고 

     내심 흡족해 합니다.그것은 초보적인 것입니다.또한 자기만족 방향으로 흐를때에는 그것을 쌓아 나갈수록 

     자기를 위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는, 좀더 묵직하게 라는 명령어를 내려주십시오. 나는 그의 최면상태를 깊게 만들고 다시 계속했다.

     이것은 환자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최면상태가 얕아 메시지의 수신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한 듯이 보이지만,

     자신의 상태에 따라 어떤 명령어가 필요한지 선택하여 내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은 

     지혜의 목소리들이 자신들이 주는 정보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그의 최면상태를 더 깊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것은 환자의 목소리가 아닌 지혜의 목소리였고 위엄있는 지시였다.


원 : 내 안의 진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겸손함으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자기가 희생함으로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참 초보적인 수준입니다.겸손함으로 사랑하게 되고, 희생하게 되고 그 희생으로 많은 것들이 선하게 될 때,

     그것이 내게 참 기쁨이 된다면 그것은 우주의 진동과 자기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을 때,많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만으로 

     마치 호랑이가 된 듯이, 코끼리가 된 듯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구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겸손하고 사랑이 있는 자가 나타났을 때,그들의 허상이 무너지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겸손은 모든 것이 실상입니다.진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진리 그 자체인 것입니다.

     사랑과 겸손 중에 겸손은 밭이고 사랑은 열매입니다.무엇이 중요합니까? 열매가 중요하지요.

     그러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 없이 어떻게 열매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개구리의 울음을 듣고 비웃습니다. 왜 저렇게 시끄러울까? 

     그러나 자신의 그 비웃음 소리가 바로 개구리 울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 영혼의 거품을 덜어낼 때 자기 자신이 내고 있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내가 굴리고 있는 헛된 것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거기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내 안에 참 열매가 자라도록 자신이 디디고 있는 존재의 바탕을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다른 영혼을 사랑할 수도 없을뿐더러 영혼과의 공명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참으로 겸손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위선,허세,가려진 모든것을 제거하므로 

     추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랑할 게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들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슴에는 우주의 진동이 담겨 있고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그 울림으로,

     수수깡으로 집을 지은 사람들의 그 위선과 세상이 주는 헛된 자랑거리들을 쓸어버리게 됩니다.

 

     이 시대는 스스로 부끄럽게 된 사람들이, 허세와 위선으로 스스로 높게 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강한 어조로) 이제까지는 위선과 허상이 그대로 지켜지고 이어 나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뀔 것입니다.

     (탄식하듯) 참으로 자기를 스스로 낮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시대가  것입니다.

     자기 비하가 아닌 부끄러움으로,사람들 앞에 내놓을 것이 없는 그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품어주고 영적인 

     성장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잠시 침묵한 후) 술병 속에 담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술은 자신의 성질이 변화되어서 사람들을 취하게 합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라는 효모를 채워야 합니다.사랑이 채워지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발효되어서 원래의 

     우리 모습과 우리의 맛이 새로운 성질로 변화되면 그것이 사람들을 취하게 합니다.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발효시켜야 되겠지요.술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사랑으로 자기를 발효시키고,그것으로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좋은 포도가 좋은 포도주가 되고,나쁜 포도는 질낮은 포도주가 됩니다.

     자신의 포도밭을 관리 하십시오.향기로운 향을 내는 포도주를 생산하십시오.


     (잠시 침묵한 후)쌀뒤주가 있습니다. 

     쌀벌레가 쌀을 파먹는 그림이 보입니다.쌀뒤주 안에 있는 벌레는 그 수명이 제한적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이 메시지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김 : 질문을 해도 될까요? 지구상의 인구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는 뭡니까?

원 : 새로운 경험이 많아야 하고 한 영혼이 여러 육신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면 새로운 각성이 일어날것입니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인구는 정리가 될것이고 새시대가 열리면 인구는 지금의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듭니다.

     한 영혼이 많은 몸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악은 더 악해지고,선한 것은 더욱 선해질 것입니다.


김 : 지금도 한 영혼이 여러 몸을 가진 경우들이 있습니까?

원 : 그렇습니다.

김 : 인구를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은 재난과 질병입니까?

원 :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 : 그것은 인간들의 행위와 각성에 따라서 유동적이라는 말입니까?

원 : 그것은 마치 뎃상이나 스케치를 한 후 수채화로 할 것인지 유화를 그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범위는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지지만 그 안에서의 현상은 사람에 의해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김 : 그때 육신을 잃은 영혼들은 어디로 갑니까? 깨닫지 못한채 어디로 돌아갑니까?

원 : 다시 뭉치게 될 것입니다.

김 : 하나의 큰 덩어리로요?

원 : 아니오.우선은 하나로 합치게 되는데, 합친다는 것은 모든 영혼이 하나로 합친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그 모습을 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딘가로 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심판의 모습, 재판장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김 : 다른 곳으로 가서 각각 심판을 받게 됩니까?

원 : 지금 제 머릿속에는 심판에 대한 개념과,모든 영혼이 진리에 이르게 된다는 개념이 같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 : 심판을 받은 후 각성에 이르고 다시 성장을 계속한다는 뜻인가요.

원 :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광대한 문제입니다.


김 : 긴장으로 풉시다.정확하게 해석하려 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긴장을 풉니다.다른 목소리들은 없습니까?

원 :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고 목소리들은 더 이상 얘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김 : 오늘은 이만하지요.


아홉번째 퇴행도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감독관으로서의 그의 생애가 끝난 뒤 나는 처음으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사이 전사 운디테도 죽은 후에 가게된 곳에서 자기 친구를 죽인 자책감과 후회로 지냈지만,그곳의 모습은 

지옥이라기 보다는 '연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발적인 분노로 친구를 죽인 것과는 달리,적극적으로 악한 삶을 살았던 이집트인의 죽음 뒤에는 지옥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자신이 휘두른 채찍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아픔때문에 무조건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앞에서 만났던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맥코넬도 죽은 후 어두운 곳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자신이 남에게 주었던 고통들을 알고 괴롭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생생한 고통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런 기억들은 우리로 하여금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즉, 죽은 후에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살아 있을 때 행했던 일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다.

흑백논리의 천당과 지옥이 아니라,각자의 삶의 정도에 맞는 사후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퇴행시켰던 다른 환자들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과오는 많았지만 그리 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삶이 끝났을 때,모든 사람들이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얘기했다.

죽음의 형태가 비참했더라도 일단 그 순간을 넘어가서는 '마음이 편하다'  '자유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빛을 따라 저절로 끌려가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삶과 삶의 중간계라고 할 수 있는 사후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쉽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이다.

이 젊은이의 기억 속에서도 중간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는 운디테의 경우뿐이다.


물론 더 깊이 파고들어 죽은 후의 경험에 집중했다면 더 많은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대로 따라가기로 마음먹었기에,어떤 특수 정보를 얻어내는 데 초첨을 맞추는 것은 

뒤로 미루고 있다.채찍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지옥이었다면,지옥의 고통은 끝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그 고통을 경험한 후 다시 태어났다.죽음 후에 겪는 고통은 깨달음과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또한 그것은 보복과 공포의 고통이 아니라,자책과 깨달음을 일깨우는 목적의 고통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옥의 실체란, 자신의 악행을 정화하고 남들에게 준 고통을 스스로 체험하기 위해 극심한 고통이 주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생애에서 채찍질로 학대당하고 재산과 딸을 빼앗겼던 사람이 결국 그를 죽였고, 현 생애에서는 그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환생의 법칙들 중 하나는,과거에 좋은 관계였던 영혼들은 현생에서도 

좋은 관계를 맺고,나쁜 관계였던 영혼들은 현생에서도 나쁜 관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사이좋은 부모와 자식,남편과 아내 등은 비슷한 좋은 관계로 계속 만나고,적대적인 관계였던 사람들 또한 서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나는 것을 자주 본다.원종진 환자도 전생의 기억에서 그 상사와 자기의 관계를 이해한 후

그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고,그에게 빚이 있다는 마음으로 지내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인간사회의 개혁과 혁명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형태만 달리한 채,본질적인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기심의 극복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인상적이다. 사회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해석보다 훨씬 共感이 간다.이타심의 공유로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온갖 불의와 불평등을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 누가 반론을 제기할 것인가?


얼핏 듣기에는 단순한 논리지만 이것이야 말로 가장 진실한 해결책인 것이다.

인간은 이타심과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전제 아래서는 아무리 복잡한 논리로 머리를 어지럽게 해봐야 

어떤 시원한 답도 얻을 수 없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날개를 만들어 밀랍으로 몸에 붙이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갔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추락했다.


이 비유는 자기 존재의 근본을 모른 채 시도하는 온갖 지적인 노력들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다.

수행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진정한 깨달음과는 관계없는 잡다한 공부들이 많다.

이런 노력들은 사람들의 지적 만족과 자기능력 과신으로 이어져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겸손하고 진지한 추구를 벗어나 자가 당착적이고 자기합리화的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많은 사이비종교와 실천 없는 신앙들,영혼에 대해 안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코끼리와 쇠똥구리,개구리의 비유도 현재의 세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저마다 목청 높이는 시대,가진 것보다 몇 배 더 낭비하고,아는 것보다 몇 배 더 떠드는 세상의 모습에 대한 경고이자 

자신의 그릇을 진정으로 키우고 닦으라는 가르침이다.


영혼의 성장과 사랑,겸손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너무나 종교적이라고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의 목소리들은 한 번도 어떤 종교만을 지지하지 않았고,오히려 실천이 없는 종교는 가장 큰 이단이며 

자신을 치장하는 장신구에 불과하다고 나무랐다.종파적인 종교의 수준을 넘어 인류보편적인 진리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예수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기는 하지만, 부처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원종진이라는 이 젊은이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에게 익숙한 예를 들어 메시지를 전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아마 그가 불교신자였다면 부처의 가르침들이 많이 나왔을 것이다.


인구의 증가에 대한 대답은 좀 낯선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지구상의 인구 증가가 고대 문명국가인 아틀란티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환생해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이와는 별도로 초심리학의 이론 중에는 한 영혼이 여러육체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는데,

지혜의 목소리들의 대답은 이 이론도 사실임을 말해준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지만,그 목적은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리되는 인구와 뭉치는 영혼,심판과 진리에의 도달 등의 얘기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논리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시간이 지나면 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열번째 만남 :고통의 의미,진정한 수행,전쟁과 평화,예언과 교훈들


열번째 퇴행에서는 전생의 기억으로 들어가지 않고,짧은 시간에 깊은 상태로 들어가 바로 목소리들과 접촉했다.


원 :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의 20년 후의 모습이라는데,그의 개인적인 것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 어떤 교훈입니까?

원 : 사람은 현재에 주어진 행복에 대해서 만족해야 하지만,거기에 안주하면 안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계지어진 상황에 안주하게 되면,영혼의 발전은 없게 되고 성장도 없게 된다고 합니다.

     영혼의 성장에 대해 거친 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그 거친 피부가 상징하는것은 우리가 비바람을 맞고 

     강한 추위속에서 살결은 거칠고 흉해지지만 아주 튼튼하고 강하게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는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지만 무척 단단해집니다.

     그러므로 많은 고난은 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의 훈련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현재 겪는 고난은 그렇게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그런 기회들이 올 것입니다.더 많은사람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이번의 이런 결정들은 그런 것을 위해 하나의 속박을 끊어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또한 경이(나의 아들이름)도, 열네 살이 
될 무렵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되지만 그러한 마음의 상처를 

     잘 다스려준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청년으로 자랄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런 작업에 참여하는 댓가로 선생님의 가족은 영적으로 풍성한 생활을 누릴것입니다.이상입니다.


김 : 주위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원 : 배추가 보입니다.배추는 넓게 퍼지려는 속성이 있고,농부는 새끼줄로 그것을 묶어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새끼줄로 감을 때 그 답답함이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상품가치가 생기지 않습니까?

     우리 삶에 주어지는 여러 제약을 즐기며 사십시오.


     그 제약은 나를 성장시킬 때에 내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정녕 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면,그 제약은 신의 축복입니다.

     제약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때에 영혼의 성장이 일어납니다.생활이 더욱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기약없이 보일지라도 내면으로는 많은 것이 자라나고 채워집니다. 알이 꽉 찬 배추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악인들이 더 잘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까요? 내가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물질과 명예를 누리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복된 삶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과 안락함은 정해진 기한이 있고 그 후에는 다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화려함의 추억들이 오히려 더 큰 씁쓸함을 낳게 됩니다.

     풍족한 삶을 누리고 만족해 하다가 무거운 허탈감에 빠질 영혼들보다는, 선한 갈등으로 

     선한 마음이 주어지는 환경적 제약을 기뻐하는 사람이 자기 영혼의 수고와 성장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 어느 것이나 극복하는 원리는 마찬가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백신을 주어가면서 까지 병에 대해 자신을 강하게 하지 않습니까? 

     작은 고통의 연습은 더 큰 고통을 이기는 백신입니다.나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항체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상입니다.

 

김 : 긴장을 풀고 휴식합니다.

원 : 세상의 허탈한 것들'이라는 말이 들리면서, OO스님의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큰스님의 법명을 댐). 왜 찡그리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그 영혼의 상태라고 합니다.
김 : 그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원 : 사람의 영역을 확장시켜보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새로운 후회 가운데에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죽은 이후에 또 새로운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 너무나 보잘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김 : 영들의 세계에서 그가 실망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원 : 자기의 삶에 대한 실망입니다.
김 : 사랑이 없었습니까?

원 : (안타까운 듯)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의 근본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즉,인간 존재의 그 본래의 모습을 탐구하지 않고 성장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마치 사상누각 인것처럼 된 

     자기 영혼의 불균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그 영혼의 평강이 없습니다.우리는 모든 수행과 정진에 있어서 존재의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그러나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망각한다면 많은 수고와 노력들이 헛된 것이 됩니다. 자기를 더 피곤하게 만들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존재의 근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기초 없이 쌓아 올린 집과 같아서 진동이 올 때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의 근본을 확인해야 하며, 영적 진보의 틀과 출발점을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하기를 원할 수는 있으나 참사랑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과, 우주의 일부라는 것,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큰 완성은 자기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조화를 이룰것입니다.


김 :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하면서,보이면 보고 들리면 들으십시오.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원 :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혈병 퇴치 캠페인에 대해서 '지혜의목소리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지한 사랑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충동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이끌고 나간다고 합니다.

     그 안에 참 사랑이 없기 때문에 거짓과 포장된 모습들이 난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또하나의 수단이 될뿐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영역의 집착입니다.


     많은 사람을 돕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참된 사랑이 없이 하나의 경향과 흐름으로만 이끌어간다면 

     그 운동은 생명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운동이 중간에 식어지는 이유는,그 안에 참사랑을 담지 

     못하고 하나의 경향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목소리들이 그런 운동을 싫어하는 또다른 이유는,그 운동을 통해서 이익을 보게 될 사람들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고,바로 그 사람들이 이런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입니다.

     악한 의도는 아니나 많은 병원에서 그런 골수이식을 통해서 자기들의 소득이 증가할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진행시키는 방송사는 자기들의 선한 행위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들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의 보기요 例일 뿐입니다.이상입니다.

     (잠시 침묵한 후) 참된 사랑과 선행은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선행이 내 이름을 드러내게 하고, 그것을 즐긴다면 그것은 허상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정녕 내가 하는일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내 영혼의 성장과 함께 신께로 가까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단지 자신의 명예와 도덕적 쾌락을 느끼려고 하는 선한 행위는 

     자신의 영적인 성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행위는 영적 성장에 써야 할 에너지를 집중시키지 못하게 합니다.그것은 선한 행위가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사랑도 없고 겸손도 없고 인내가 없기 때문에 지속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행위로서 그럴듯하게 자기를 포장하고 드러내지만 모두가 쓸데 없는 행위입니다.

     불필요한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드러내지 마십시오. 숨어서 행하십시오. 보상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영혼이 더욱더 진보하고,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큰 상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고 부처의 모습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형상과 이미지를 

     내 안에 새겨서,내가 그분과 같이 되고 그분의 일부분으로 내가 끼워져 들어갈 때에 

     우리 존재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2,000년 전에 유대인 성직자들을 야단칠 때 그 마음 가운데에는 그들의 수고로운 삶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장과 아무 상관 없는 그러한 선한 삶은 삶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도덕적 쾌락만이 남는 그런 삶을 이제 배제해야 합니다.예수의 가슴에 더 멍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


     (잠시 침묵 후) 핵무기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핵무기를 소유했던 국가를 지배하는 세력이 양극화에서 이제는 단일화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대결을 위해서 만들어졌던 핵무기가 이제는 세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써 사용될 것입니다.

     더 많은 숫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수를 줄여나갈 것입니다.


     프랑스와 중국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이들이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일본도 핵무기를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그들은 곧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전략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으로 시베리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있습니다.

     (안타까운 듯) 그러나 이것이 그 민족의 삶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고, 멸망을 재촉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멸망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중국은 역사의 모습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만 그것은 병이 치료되기 전에 증세가 더 악화되는 듯한 이런이치와 같습니다.

     하나하나 그 나라의 부끄러움이 드러날 때마다 새로운 씻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많은 영적인 선각자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마치 그 능력들이 모두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 것과,많은 민족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그 능력에 도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섬겨야 합니다. 과거의 많은 나라들은 세계를 지배함으로 자기의 권력을 확인했지만 이제 
이 나라는 

     많은 나라를 섬김으로 자신의 권위를 새겨야 될 것입니다.존경과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권위 이것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나가야 될 것입니다.그들이 무엇인가 선한 것들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분위기들,영적인 공명들이 이 나라를 청결하게 할 것입니다.(확신에 찬 듯)


     악의 세력들이 제거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얼굴이 찡그리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순수하고 어리숙하기까지 한 그런 착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아나가게 될 것입니다.

     힘의 지배는 끝입니다.그러나 완전히 종식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대결.이상입니다. 


     (잠시 휴식한 후)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보입니다.항공모함에서 비행기가 이륙합니다.어디일까요.

     중동 쪽입니다. 북아프리카 동티모르의 보습이 보입니다. 보스니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내 마음 가운데에 아픔을 가졌습니까? 목소리들은 그 사건들에 대해서 무척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인류 이래로 시작되었던 전쟁의 역사들.하나님의 뜻으로 시작된 전쟁은 막을 수 없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괴롭고 처절한 목소리로) 두려움, 굶주림에 억눌린 영혼들은 우리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뜻함을 누릴 때에 저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두려워하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들에 대해서 우리의 영혼은 그 쪽으로 눈을 떠야 합니다.

     그들이 바라는 만큼의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 고통들이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가슴아파 합니다.


     (괴로운 탄식과 신음을 내며 약 1분간 침묵함) 지금 저에게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보스니아 내전을 겪고 있는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망연자실한 모습.그 아이는 부모를 잃었군요.수용소에 있습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지만 혼자서 자라야 합니다.(크고 강한 어조로) 우리는 마음을 울려서 우리의 심장을 

     그들의 혈관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지금 제 눈앞에 잡다한 영상들이 나타납니다.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는 그 마음을 내가 가져야 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있는 곳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보내야 합니다.

     물자를 보내주고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이 땅에 평화가 올 그날은,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구해야 하며,그것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주의 진동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을 끌어들어서 이 땅을 휩쓸고 있는 전쟁과 기아와 공포와 두려움을 부러뜨리고,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횃불로 지지듯 지져야 합니다.사랑의 불길로 우주에서 가장 큰 에너지인 

     사랑으로 우리는 우주의 움직임을 거스르는 모든 세력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 말과 함께 전해진 감정적 에너지는 굉장한 것이었다.연민과 슬픔의 파동이 모든 단어 속에 스며 있었고,

     그 떨림은 진정 가슴속으로의 신음과 탄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그 처절한 영혼의 공명을 

     지켜보았다.그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연민의 표현이었다.

     악의 세력에 대해서도 무척 강한 어조로 확신을 담고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잠시 휴식할 것을 지시했고, 그는 조금 후 또 다른 가르침을 전했다.


원 : 맷돌에 콩이 갈려 두부가 되는 것으로 또 새로운 가르침을 줍니다.
김 : 들어보십시오.

원 : 우리가 남을 섬기려 할 때는 딱딱한 콩과 같아서,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유익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자신을 물에 불리고 돌에 갈아서 자신을 사그러뜨려 두부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많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가 바로 이런 두부가 되기위한 과정입니다.


     원래 갖고 있던 딱딱한 마음을 불리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껍질을 벗겨야 하며,원래의 형상조차 깨부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이뤄지지 않고는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보습이 될 수가 없습니다.내가 선하게 살기로 했는데 맷돌에 가는 것처럼 고통이 있다면 이것은 

     내 안에 있는 옳지 못한 것들이 갈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콩을 맷돌에 간다고 그 화학적 성분이 달라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섭취하기 힘든 물리적 성질만 달라질 뿐입니다. 우리는 신께서 주신 고귀한 모습을 잃지 않되 

     자신이 갖고 있는 모난 부분을 맷돌에 갈아야 합니다.신께서 주시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그것을 갈아내고 

     순수하게 정제되어야 합니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라고 합니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들 영혼의 성장을 위해 신이 주는 훈련이라고 했다.주어진 행복 안에 안주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고 배움을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내 아내의 고난에 대한 얘기는 뜻밖이었다.


나의 아내는 산부인과 의사다. 어느 의사보다도 자신의 환자들을 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지나쳐 

주위로 부터 바보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환자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공명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아기를 새로 받을 때마다, 처음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른 축복의 말과 기도로 환영하는 매력적인 여의사다.

아내는 근무하는 병원에 대해 요즘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다. 조직 내에서는 개인의 열성과 진실이 언제나 

보상받고 인정받는게 미덕이 아니라는 괴로운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해주면 상대방도 그러리라는 순진한 믿음들이 깨진 지금은 많은 정신적 방황과 회의속에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워가는 어려운 시절이다.계산할 줄 모르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였던 

사람으로서 이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와 목표를 한 번쯤 점검해볼 때가 된 것이다.


최근 아내는 직장을 쉬기로 마음을 굳혔다. 얼마간 쉬면서 묵은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방향을 찾겠다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이 결정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하나의 속박을 끊고 새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준 것이다.


나는 아내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는데, 목소리들은 내 마음 가운데에 아내에 대한 걱정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 아들 경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된 개구쟁이인데,그 아이의 미래에 대한 얘기와 함께 내가 이 작업을 하는 

대가로 가족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다.


깨달음의 화신으로 까지 생각되던 고승에 대한 얘기는 더 뜻밖이었다.

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수행 자체에 몰입하여 지나치게 영웅적인 정진을 하다 보면, 

출발점을 잊고 자기 능력의 증대라는 목표에만 집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생을 바쳤던 그 노력은 앞으로 다시 살아야 할 생애에서 참 진리에 이르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업이 되겠지만,

지난 생애에서는 후회할 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초능력이나 염력 등의 수련을 하는 것도 영혼의 성장과는 아무 관계 없는 지적 만족과 자만심을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모든 수행의 기본이 되는것은 자기 존재의 근거를 망각하면 참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선행의 가치와 백혈병 환자의 대대적인 캠페인에 대한 경고도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다.

여러 나라의 미래에 대한 예언들 중 한국의 미래는 아주 낙관적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전쟁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영혼의 공명을 호소할 때의 

그 강렬한 슬픔의 울부짖음은,진정 인류를 사랑하는 신의 사랑이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 한일 관계와 우리 사회에 대하여


언제나 미묘한 관계인 한국과 일본 사이는 요즘 들어 일본이 새삼스럽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불편한 국면에 놓여 있다.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우려하는 문제인 만큼 최근 원종진 환자와의 퇴행작업중, 

기회가 있을 때 '지혜의목소리들' 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원래 이 책에는 열번째까지의 퇴행 내용만 다루려고 

했지만 이것은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소개하기로 한다.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김 :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원 :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다시금 협력관계로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더 이상 친밀해지지는 않습니다.
김 : 우리 민족이 일본에 대한 빚이 많은가요?

원 : 서로가 서로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일본은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힌 것에 대해서, 

     한국은 수천년 동안 그들을 멸시하고 모욕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사람들에 

     대한 가혹함들을 반성해야 합니다.


김 : 고대의 역사 말입니까?

원 : 네. 한국에서 그것을 먼저 풀지 않으면 일본과의 관계는 풀리지 않습니다.

     일본 지도층인 지배집단의 의식 속에는 유전적으로 수천년 전부터 당해왔던 핍박과 멸시,모욕감 들이 

     전해져 와서 그것이 하나의 복수심으로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그것을 먼저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 : 우리가 먼저 사과를 하면 그들의 마음이 풀어집니까?
원 : (안타까운 듯) 그렇지 않습니다.
김 : 해결방법이 뭡니까?

원 : 자신이 바른 길을 가게 되면 왜곡된 것도 그 길을 따라오거나 부서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자기가 할 것을 하고 다음은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공을 일본에 넘긴다는 것입니다.
김 :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일은 어떤 것입니까?

원 : 겸손한 마음을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합니다.한국사람들은 약자에 대해서 오만한 마음을 많이 품어왔습니다.

     정신적인 리더가 되려면 겸손함을 배워 격을 달리해야 합니다.기본적으로는 도덕과 양심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양심과 규범대로 사는 삶이 우선 급합니다.


김 : 도덕으로 무장한 사회질서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원 : 그렇습니다.

김 : 그 도덕은 종교적인 도덕이나 윤리적인 도덕 중 어떤 것을 말합니까?
원 : 모든 것을 통합한 도덕입니다.즉,그 도덕의 핵심은 겸손과 희생입니다.

     겸손하고 봉사할 줄 알면 모든 왜곡된 것들이 바로 서게 됩니다. 

     한국이 당한 어려움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죄의 대가이고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김 : 앞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습니까?
원 : 그런 움직임들이 여러 군데서 일어날 것입니다.

김 : 당신들의 메시지도 그러한 움직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원 : 국지적으로는 그렇게도 되고 목소리들의 메시지는 단순히 한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김 : 이 메시지들이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됩니까?

원 : 네. 다양한 사람들이 듣게 되고, 자기것으로 만듭니다.

     새벽에 수탉의 울음소리와 같은 역할을 할것입니다. 하나의 종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것입니다.

김 : 그런 도덕적인 운동을 큰 저항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됩니까?

원 : 이 운동은 표면화되어서는 실패합니다.각 개인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말없이 변화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캠페인이 되면 또 실패하게 됩니다.

김 : 진정한 깨달음을 이룬 많은 개인들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원 : 네. 몇 사람의 핵심적인 지도자가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않는 가운데 점차 이런 일들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두 가지 방향으로. 하나는 대중의 공감과,또 하나는 새로운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전달될 것입니다.

 

고대사에서 한국은 언제나 일본을 천대해왔다.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쫓겨가 정착한 곳이 

일본이고,조선조 초기만 해도 조선은 일본에 대해 형님 행세를 단단히 했다.

근세사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고 식민지로 까지 전락한 시절이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본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감이 있음은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경제대국을 이루었지만 고대에는 그들의 문물이 모두 우리 선조들에게서 전해받은 것이고, 

백제에서 건너간 유민들이 일본의 지배계급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목소리들은 우리의 깊은 멸시와 천대가 그들의 복수심을 만들었고 그 결과 그들의 침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민족간의 카르마를 해결하는 방법도 개인간의 경우와 같다.사랑과 겸손이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인정해줄 때,두 나라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과 원한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긴다는 것이다.도덕적인 사회로의 변화는,목소리 높여 도덕의 가치를 떠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이 변화되는 과정 가운데 자연히 실현된다고 했다.


감정과 변덕에 호소하는 일시적인 캠페인이 아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룰 수 있고 사회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목소리들의 메시지는 그런 변화에 도움을 줄 것이며,새벽을 깨우는 수탉의 울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인류 보편의 진리들에 대한 이 메시지들은 멀리까지 퍼져나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제2부 : 남은 이야기들  


◆'목소리들' 에 대하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원종진이라는 젊은이의 열 번에 걸친 전생 퇴행 기록 테이프를 들은 셈이다.

사람마다 느낌도,반응도 제각각이겠지만,나 역시 아직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순수하게 의학적인 목적으로 전생 퇴행을 시도하는 것이 내 본래의 뜻이었고,그 과정에서 유독 이 젊은이는 

지혜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듣게 되었다.


여러분이 읽은 것처럼,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는 전생으로의 퇴행보다는 가르침과 예언의 메시지를 주로 받았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한결같이 사랑과 희생,인내와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고,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가지 중요한 비밀들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얘기해주고 있다. 다가오는 시대에 모두가 준비하도록

이 사실들을 알리라는 당부이다.


여러분 중에는 퇴행시의 기록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원종진 환자와 내가 공모하여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면 우리는 굉장한 사람들일 것이다. 

목소리들이 전하는 심오한 가르침들은 내 수준이나 이 환자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의심의 눈길로 그 가르침들의 내용을 본다 해도 그것이 예사로운 조작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관된 사랑과 희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기극을 벌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별로 

설득력이 없다.중요한 예언들이 주어지는 이유는,그 예언들이 지혜의 모소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진실성과 권위를 더하고,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기울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거듭 말하지만,나는 이 목소리들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브라이언 와이스와 다른 몇몇 전생퇴행치료자들도 이 목소리들을 아주 드물게 만났고, 
그들의 실체를 

수준높은 '고급령(Madterspirit)'이라고 했다. 그 의견에 나는 개인적으로 동조하지만 흔히 말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증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단순히 '지혜의 목소리'라고 한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외국의 여러 전생 퇴행의 사례 중에는,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조직적이고 

스케일이 큰 가르침과 예언들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종교인들은 그 존재들이 악령이나 잡다한 조무래기 귀신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을 환청이거나 과대망상증 환자의 독백이라고 몰아 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목소리들이 제시하는 사랑과 희생,인내와 고통,생명과 영혼에 대한 사랑과 성장,악한 세력의 

구별 방법과 경고, 많은 예언과 여러가지 비밀에 대한 초능력적인 해답,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슬픔,

예수나 부처, 하나님에 대한 잦은 언급을 볼 때 그것은 비논리적인 결론이다.


나는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도우려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기독교의 '성령' 불교의 '불심'이라고도 했다. 지금 우리 주위는 혼란스럽다.

기존 종교는 권위를 잃어가고,물질문명의 온갖 해악들이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 갖가지 

범죄자와 패륜아,부도덕한 정치인들이 들끓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누구도 점칠 수 없는 혼돈중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기말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 고대의 예언들과 혹세무민하는 갖가지 루머와 억측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런 시점이야 말로 뭔가 진정한 희망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처음 몇 번의 퇴행을 마칠 때까지도 나는 이 내용을 책으로 쓰게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듭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나 혼자 들으라고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열한번째 퇴행은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았는데, 목소리들은 중세의 마녀사냥에 대해 설명했다. 

그 시대의 지배층은 자기들의 권위에 자신이 없어서 마녀사냥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사상을 탄압했다.

그 설명 끝에 나에게 '당신도 마녀사냥의 표적이 될 수 있다.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참된 진리는 언제나 매도 당한다. 매도당하지 않는 진리는 타협으로 흐를 뿐이다.

당신은 진리를 수호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해주었다.지금의 내 마음은 담담할 뿐이다.

흥분도 두려움도 없고,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 원종진이라는 젊은이

 

전생 퇴행의 과정을 거듭하면서,나는 이 청년에 대해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이에 비해 무게가 있고 사려깊으며,안정감 있는 태도와 침착한 성격과 뛰어난 직관력을 갖춘 젊은이였다.

늘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을 반성하고,몸에 밴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실제 가장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했던 것도 그런 성격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기억해낸 전생 중에는 수행자로서의 생애가 여러 번 있다.내 판단으로는 그런 수행생활의 경험도 

성격에 많은 흔적을 남긴 듯하다.대학 졸업후 직장을 몇 군데 옮기면서 이런 저런 고생과 좌절도 겪어보았고,

심한 자기불신과 우울에 빠져 방황하던 끝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이리저리 찾다가 윤회와 환생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 그의 계획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다.

지혜의 목소리들은 장래에 그가 할 일이 있으니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와 같이 살았던 전생의 기억들을 떠올린 후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무척 가까워졌다.

그의 진지한 생활태도를 볼 때 앞으로 얼마간의 준비기간을 거치면 정말 훌륭한 정신적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전생 퇴행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성격상의 단점과 나쁜 버릇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평소에는 순하다가도 부당한 것을 보면 과격하게 화를 낸다는 점과,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독선적 태도가 숨어 있었고,뭔가 불만스러울 때는 음식을 계속 먹어대는 폭식의 습관이 있었다.

 

또 직장 생활에 따른 자신의 장래와 위치에 대한 불안과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갈등도 있었다.자신이나 주위사람들에게도 완벽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 기준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울해하고 속으로 화를 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퇴행을 계속함에 따라 그는 눈에 띄는 생활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우선,어떤 상황에서도 과격한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진정 주위사람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려는 너그러운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폭식 습관도 완전히 사라져,적당한 포만감에서 수저를 놓으면 더 이상의 유혹이 없어졌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버릇도 '언젠가는 될 것이다' 하는 느긋한 태도로 변해 여유있게 자신과 주위를 바라보고 있다.

영혼과 윤회에 대한 믿음 자체가 생활 속에 스며들 때 누구나 이런 변화를 보이기는 하지만,특히 이 청년은 

그 믿음의 확인으로 자신의 정신적 추구에 있어서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방황이 끝나고 갈길만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안정되어 보이고,그 길에 대해 철저한 성실함으로 일관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내게도 강한 애정과 신뢰를 보이며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고,나 역시 그가 잃었던 동생처럼 느껴진다.

나는 현생에서의 동생을 잃고 전생의 동생을 되찾은 셈이다.


목소리들은 나에게 그를 동생처럼,친구처럼,제자처럼 대하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그를 통해 더 많은 도움을 받았고,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목소리들의 예언대로 그가 10~20년 후에 훌륭한 성직자가 되어 종파주의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진리를 

가르치게 된다면,나 역시 힘 닿는 데까지 그를 도울 생각이다.


  내가 겪는 변화


여러 환자들에게 전생 퇴행 치료법을 시술하면서 내게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윤회와 카르마,환생의 개념 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그것은 이론적인 개념들에 불과했다.

특히 원종진 환자의 퇴행과 지혜의 목소리들과의 거듭 된 만남은 나를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꽤 똑똑하고 유능한 정신과 의사라고 생각해왔다.


논리적이고 중립적인 정신분석 이론과 다양한 정신치료의 원칙,약물치료 이론에 충실하게 환자들을 돌봐왔고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다.그러나 흡족하지 못한 부분도 많이 있었다.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환자들과,꾸준하고 다양한 치료로도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한 환자들은,

언제나 정신의학의 한계와 내 능력의 부족함을 동시에 생각하게 했다.

 

병이 낫지 않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고 때로는 환자 자신의 성격이나 환경이 문제가 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지속되는 갖가지 증상들은 언제나 의사를 맥빠지게 만든다.전생 퇴행 요법은 이런 난치의 환자들에게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이다.모든 환자가 이 방법으로 도움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길이 막히는 곳에서는 

발상의 전환과 도약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온 나에게,이 방법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현대의학은 '육체의 상실'을 우리 생명의 끝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육체의 상실'이 생명의 끝이 아님을 알기에 '죽음'이라는 말 대신 새로운 단어를 찾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써오던 '돌아가셨다'라는 말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고대인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앞서 있었기에 죽은 후에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다.

거듭되는 환자들의 전생 기억과 그에 따른 생생한 감정, 사망 순간들의 체험과 영적인 깨달음을 보면서 생긴 

나의 변화는,가슴으로부터 윤회와 환생의 진실성과 목적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자신의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환자들과의 복잡한 면담에서도 나는 예전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감정으로 그들을 대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질과 짜증이 많이 줄어든 것을 느끼고 있다.환자들 영혼의 공명에 나를 맞추려 노력하면 더 깊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의사전달과 치료의 효과가 증대되는 것을 요즘 들어 거듭 확인하고 있다.

 
진료실 창밖을 내려다보면 거리를 지나는 많은사람의 모습에서 '내가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할지 모르는 수많은 

삶 속에서 저것이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부터 나는 거친 운전으로 

아내와 늘 다투었다.요즘은 앞으로 끼어드는 차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내 모습에 아내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분명한 변화가 있다.아이의 잘못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큰 소리를 지르는 일이 없어졌고,

아내와의  대화도 더 깊어지고 많아졌다.결혼 11년째인 우리는 서로 바쁜 생활과 피곤함 때문에 진지한 대화가 

부족했다.나를 통해 윤회와 환생의 개념에 대해 익숙해진 아내는, 이제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을 

더 큰 시각에서 바라보고 소화해 나가고 있다.


내가 퇴행시켰던 모든 환자들이 현재의 가족 중의 누군가를 과거의 생애에서 만났다.

역할과 위치는 바뀌지만 생애를 거듭하면서 지속되는 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 친구 들은 분명 처음 만나는 관계가 아니다.환자 중의 한 사람은 

수백년 전의 생애에서 나를 만났었다.그는 그 생애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억울한 죽음을 보았고,나를 보았다.


나 또한 그 생애에서 많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그 내용에 대해 원종진 환자와의 퇴행 과정에서 '지혜의 목소리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목소리들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했고,그 생애에서의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을 유물론적이고 생물학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도약적인 발전은 없다.

지금의 정신의학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의 바탕 위에 있고,많은 질병을 다스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나 내가 느끼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삶의 중요한 문제인 종교 샤머니즘,신비한 경험과 환자들의 주관적인 주장에 대해 귀를 막아서는 안되는데도 

애써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기존의 이론과 가설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든다.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을 연구하려는 태도보다는 궤변적인 변명과 책임전가로 환자들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망상과 환각으로 몰아버리는 때가 없는지,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종교문제에 무지하고 영적인 현상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잘못된 믿음이나 신앙체계를 

비판할 만한 능력도 없는 것이다.그런 무능력을 마치 중립적이고 신중한 태도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정신의학은 인간 존재의 본질인 영혼을 다루어야 한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리는 누구도 죽지 않으며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윤회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윤회론이 모든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 너무나 쉽고 포괄적인 해답을 

주기 때문에 의심스럽다고 말한다.그들의 생각은 진리란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어 있다.

그러나 단순한 논리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면 오히려 바람직하고 뛰어난 이론이 아닐까?

 

오히려 이론이 불완전하면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많은 단어와 이상한 개념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윤회론을 믿는다고 해서 현실의 고통과 고난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거나 현재의 어려운 상황들이 즐거워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과 상실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마음 속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억울함이, 진정한 수용과 

희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자신의 행동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적인 삶들이 올바른 방향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최면술과의 만남


나는 어릴때 부터 근원적인 삶에 관심이 많았다.중학교때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에도 가보고 혼자서 이책 저책을 

읽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은 어디에도 없었다.내 눈에는 깊은 신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무조건 신에게 기대려는 비겁자들로 보였다.

 
윤회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미신 중의 미신이라고 생각했다.계속 바뀌는 몸을 가진다면 진정한 자기 자신은 

없는 게 아니냐는 단순한 머리밖에 없었다. 따라서 윤회를 가르치는 불교는 내게는 미신의 일종으로 보였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완전한 폭력이라는 느낌이었다.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지옥에 박아 영원히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은 거리의 깡패가 하는 협박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회의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보다는 뭔가 더 그럴듯한 설명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때의 내 막연한 기대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만났다.한자 투성이의 어려운 말들이 

가득한 그 책은 뭔가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듯했다.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어려운 말들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는 자체가

대단히 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강한 인상을 어린 내게 심어준 것이다.


어려운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지적인 만족감에 빠져 있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의 책에 맛들인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대표적인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많은 

사상들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납득할 만한 절대 진리는 없었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은 한때 평생을 수도 생활에 바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일은 없다.나에게는 편하게 살면서 진리를 찾고 싶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숨어 있었다. 프로이드에 대한 강한 인상으로 언젠가 나도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가 되면 내가 원하는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백일몽과 같은 막연한 희망에 불과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정신과학에 대해 실망했다. 

병원 실습중 내 눈에 비친 정신과 병동 입원환자들의 무기력하고 정체 된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인턴을 마치고 각자의 수련과목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정신과에 대한 강력한 끌림을 애써 부정하고 다른 과에 

지원하려고도 했었다.그러나 내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정신과 레지던트였던 한 선배에게 내 진로를 상의했더니, 

공부를 많이 하고 싶으면 내과를 하고,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하고 싶으면 정신과를 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내 마음을 완전히 굳혀주었다.선배의 그 말은 내게 숙제와도 같았던 삶의 궁극적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게 해준 한마디였다.그 후 14년간 나는 내 환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정신과 환자들은 모두가 다르다.100명의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100가지의 우울증이 있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능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


어느 의사나 계속 공부해야 하지만,특히 정신과 의사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성장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내가 최면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그 시절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용돈을 주머니에 넣고 청계천 헌책방을 하루종일 뒤지는 것이었다.

두 세 정류장 거리의 길이로 헌책방만이 가득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체육용구와 잡다한 가게들이 들어섰지만, 

그때만 해도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모두 모여드는 곳이 청계천이었다.

 

그곳을 뒤지다가 최면술에 대한 책을 사가지고 돌아온 나는 그 책에 있는데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고,

그 결과에 대해 커다란 놀라움과 함께 흥미를 느꼈다.동생을 상대로 타인 최면 연습도 했고,

벌레를 잡아놓고 내 염력과 집중력으로 기어가는 방향을 바꾸는 실험들도 했었다.


본격적인 최면의 공부와 이용은 환자들을 보면서 부터이다.평소의 진료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최면앞시의 원칙들을 이용하고,긴장과 불안을 덜 수 있도록 직접적인 자기최면과 이완법 등을 가르쳤고,

지금은 여러 가지 새로운 테크닉들을 사용하여 퇴행에 이용하고 있다.


최면의 이론은 간단하지만 그 숙달에는 상당한 경험과 시행착오가 따른다. 여기서는 최면술에 대한 지식을 다룰 

공간이 없으므로 최면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효과를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최면은 우리 속에 숨어 있는 

내적 에너지와 능력들을 끄집어 내어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최면상태는 우리가 일상의 생활에서 늘 경험하는 

것으로,좋은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가는 것을 잊거나 뭔가에 몰두하여 주위를 잊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자신의 잠재의식을 이용할 수 있다. 최면은 거의 모든 사람이 걸린다. 

영민하고 집중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더 잘 걸린다.최면이 주는 이점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긴장의 제거와 이완의 심화, 집중력 강화와 학습능력 향상, 기억력 향상, 열등감 극복과 자기이미지 개선,

나쁜 습관의 제거와 대인관계 개선, 공포증 치료 등이 대표적이며, 전생 퇴행을 통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모든 최면은 사실상 자기최면이다. 시술자는 그 과정을 안내하고 끌어주는 것뿐이다.


   폐비 윤씨 이야기


각각의 환자가 기억해내는 전생들 가운데는 가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유명인사였다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의 눈길을 받게 된다.그러나 정말 과거의 유명인사들도 남들과 같이 

환생의 법칙을 피할 수는 없늘 것이다.만약 그들 중의 하나가 전생요법 치료를 받게 된다면, 

그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우리는 과거 유명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외국에서 수백 건의 퇴행을 했다고 하는 치료자들도 아직은 놀랄 만한 인물의 환생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내 환자 중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기억해낸 사람이 있다.최면감수성이 아주 강한 이 환자는 30대 

초반의 여자인데,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처음의 전생 퇴행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을 보았다.


맨 처음에 본 것은 흰 신발과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주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이었으며,머리를 길게 한쪽으로 묶어 어깨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다음 장면은 궁중으로 생각되는 곳의 정원이었다. 캄캄한 밤이었고 손에는 옥으로 된 쌍가락지를 끼고 있었다.


장면이 겹치면서 기둥이 많은 주랑이 어렴풋이 보였고, 경복궁 같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자기가 서 있는 건물 앞에는 나무가 있고 그 건물의 그림자가 뚜렷이 보였다고 했다.

다음에는 화가 난 젊은 임금의 붉은 얼굴과,그 옆에 붉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심술궂은 여인을 보았다.

자신은 뭔가를 열심히 임금에게 호소했지만 왕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그때의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은 

너무나 생생했다. 자신의 신분은 고귀하나,모함에 몰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면은 낮이고,검은 소반에 얹힌 약사발을 보았다.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억이 잘 안난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참한 규수로서의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키는 작은 편이지만 얼굴은 무척 희고, 이목구비의 선은 

가늘었지만 아주 예뻤다.다음 장면에서는 약을 먹고 죽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생애에서의 배움은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사랑해야 한다는 이었다. 그 임금의 얼굴은 지금의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직장 상사라고 했다.이 기억을 되살린 후 환자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뚜렷한 이미지들은 사진보다 더 선명할 정도라고 했다. 


이 환자는 어려서부터 한약 달이는 냄새를 맡거나 한약을 담은 사발을 보면 '저걸 먹으면 죽는다'는 생각과 함께 

소반에 올려진 사약이 떠올랐고,고궁에 가거나 그 담 옆을 지나갈 때면 강한 기시감-데자뷰

(deja vu : 처음 가본 장소나 처음 대한 사물이 낯익게 느껴지는 현상)을 느껴왔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나 보다고 스스로 말했다.또 어릴 때부터 화가 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항상 구토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고,

먹은 것이 없는데도 배가 뒤틀리는 증세를 자주 경험해왔다고 했다.

 

이 현상은 특히 그 직장 상사를 만나야 할 때나 그와의 불화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했다.

사약을 받고 죽은 고귀한 여인이란 말에,내 머릿속에는 조선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의 중전이었고 연산군의 모후인 

폐비 윤씨가 떠올랐다.이 환자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누구일 것이라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게 그런 사람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자기는 그런 장면들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으니 신기하기는 하지만 환상이나 상상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돌아갔다.


일주일 후 다시 왔을 때는 웬지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다가 퇴행에 응했다.

이번에 본 것은 화려한 궁중 예복을 입고 왕과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주위에 궁중 나인들이 보이고,이번에는 푸른 옷을 입은, 지난번에 봤던 여인을 또 보았다.

자신의 손을 보니 무늬가 있는 큰 금가락지를 끼고 있었고,발에는 화려한 신을 신고 있었다. 


여러 개의 장면이 지나가면서 대신들이 부복해 있는 모습도 보았다.

임금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뭔가를 열심히 얘기했지만 임금은 반신반의하는 태도였고,임금의 그런 태도는 

분명히 모함 때문이었다.궁정의 뜰과 계단에서 놀고 있는 서너 살 된 통통한 아들의 모습도 보았다.

복건을 쓰고 아이들이 첫돌 때 입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자기 모습과 색깔을 알 수 없는 짙은 빛 옷을 입은 관헌들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로부터 사약을 받았고,그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는 돌들이 깔려 있는 바닥이었다.

처음에는 사약을 거부하다가 결국 체념하고는 북녘을 향해 절을 하고 앉아서 약을 마셨다.

절을 할 때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 끝이 보였다고 했다.죽기 전의 마음은,너무나 억울하다는 것과 아들을 간절히 

보고 싶다는 처참한 심정이었다. 짙푸르고 커다란 잎이 달린 나무들도 보았다.


죽음의 장면은 첫날 보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고, 죽어서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시대를 물으니 조선이라고 했고, 연도를 물었을 때 1, 4, 8, 2의 네 글자가 눈앞에 보인다고 했다.

죽은 후의 모습은 뚜렷하지는 않지만 피를 많이 흘린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번에는 깨어난 후 상당히 놀라는 모습이었다.첫 번에는 자신의 환상이라고 생각했지만,이번에는 심각한 얼굴로

'그건 모함이었어요' 하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국사대백과사전>을 뒤져 폐비 윤씨와 성종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폐비 윤씨가 사망한 연도는 서기 1482년이었고,계절은 음력 8월이었다. 

죽기 직전에 짙푸르고 잎이 큰 나무들을 보았다는 것은 늦여름인 음력 8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궁중 뜰에서 놀던 어린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이 환자가 실제로 폐비 윤씨였다면 그 아들은 

연산군이 되는데,그가 지금의 남편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직장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변덕스런 상사가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그 퇴행 속의 임금이었고,현생에서 동생처럼 따르는 남자 후배는 친정동생이었다고 했다.

죽은 연도와 계절은 확인이 되었는데, 죽기 전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이 보였다는 얘기와 자신이 사약을 받은 

장소의 바닥에 돌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은 폐비가 친정에서 사약을 받았다는 것뿐인데,그 친정이 어딘지는 몰랐다. 

그냥 막연히 생각하기는 어디 먼 시골이려니 여겼다.그러나 이리저리 수소문해보니 윤씨 친정은 먼 곳이 아니라 

'연화방' 바로 지금의 종묘옆 연지동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그렇다면 궁궐과는 지척의 거리이고 

그 시절에는 높은 건물도 없었으니 멀리 궁궐의 높은 지붕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환자는 폐비 윤씨의 얘기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TV연속극에서도 가끔 다룬 주제였지만.그는 원래 연속극이나 

TV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다음 면담 시간에 내가 윤씨의 얘기를 상세히 해주자 그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완전 모함이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그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이제는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왠지 모르지만 이 두 번의 퇴행 이후로 이 환자는 약물에도 잘 듣지 않던 우울증과 자살충동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병원에 다녀야 할 정도는 아니다.

내 개인적 욕심과 호기심은 이 환자를 거듭 그 생애로 퇴행시켜 더 많은 자료를 얻을 것을 충동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환자는 그 괴로웠던 순간들로 돌아가는 데 대해 전혀 흥미가 없다. 


최면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과 비통함을 호소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탄식과 아들에 대한 미련을 

피를 토하듯 토해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도저히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진정으로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고 하고,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내 말을 듣기 싫어한다.


지난 연말에 EBS에서 '역사 속으로의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일이 있다.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내용이 었었다는데,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다.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그 환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퇴행 속에서 자신이 밤에 서 있던 장소가, 바로 왕비의 처소라고 소개된 창덕궁 

'대조전' 앞 같다는 얘기였다.TV에 나온 장신구도 똑같고, 다만 자신이 입었던 옷은 좀더 짙은 색이라고 했다.

나는 교육방송의 아는 PD에게 부탁해 그 프로그램의 비디오를 하나 입수해서 확인해 보았다.


이 환자는 몇 개의 생애를 더 찾아냈지만 평범한 것이었고, 이제 더 이상의 퇴행은 원하지 않는다.

나 또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언제든 마음의 준비가 되면 폐비 윤씨의 생애로 돌아가보겠다는 환자의 말을 

따르고 있다.그런데,원종진 환자와 작업하던 중 나는 '지혜의 목소리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마음 한구석에 연산군과 폐비 윤씨에 대한 궁금중을 접어둔 채 퇴행을 인도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무슨 가르침인가의 끝에 갑자기 '당신이 아는 연산군은 그렇게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왜곡된 정보, 왜곡된 이미지들이 그 연산군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지만 

그가 쿠데타만 막을 수 있었다면 아주 훌륭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하는 말을 했다.

 

나는 놀랍고 반가워 곧바로 질문을 했다. "그 환자는 폐비 윤씨였습니까?" 대답은 즉시 '그렇습니다' 였다. 

"그럼 지금의 그 남편은 연산군입니까?" 역시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이었다.너무나 믿기 어려워 발표할 생각이 

없었지만,시간이 흐를수록 이 환자가 나를 통해 그 기억들을 되살린 것은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 모자의 억울함을 알리고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닐까? 

판단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지만,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억울함을 믿는다.언젠가 그 환자가 전생 퇴행에 

다시 동의하면 그 생애로 거듭 퇴행하여 세부적인 일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금례라는 여인


다음에 소개하는 환자는 자신이 1900년대 초에 서울 가회동에 살았었고 1920년대 초반에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네살에 죽었다고 말한다.그때의 이름은 김금례,친정아버지는 김홍균,친정어머니는 이서경,남편은 홍철,

시아버지는 홍경동,아들은 홍성원(혹은 정원) 이라고 했다. 환자는 35세의 박모 여인이다.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손대지 못하고 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 이름들을 알거나 단서가 될 만한 사실을 아는 분이 있으면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김 : 뭐가 보입니까?
박 : 밤에 비가 오고 있어요.
김 : 비를 맞고 있나요?
박 : 아뇨,툇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보고 있어요.
김 : 마당에는 뭐가 있나요?
박 : 별거 없어요. 쪼끄만 화단이 있어요.
김 : 당신은 누굽니까?
박 : 열여섯 살이에요. 시집왔는데요.
김 : 이름이 뭐죠?
박 : 금례예요.
김 : 손을 보세요. 어떻게 생겼나요?
박 : 하얗고 조그맣고 통통해요.
김 :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죠?
박 : 얼마 안 됐어요.
김 : 기분은 어떤가요?
박 : 그냥 편안하고,쓸쓸하고, 엄마가 보고 싶고 그래요. (시종 어린 소녀 같은 애교 있는 말투이다)
김 : 그 집에는 누가 사나요?
박 : 시부모님하고 남편요.
김 : 거기가 어딥니까?
박 : 모르는데요. 1900년대 초예요.
김 : 내가 하나에서 다섯을 세면 때와 장소를 알게 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박 : 1905년, 가회동이에요.
김 : 어떤 집인가요?
박 : 한옥집요.
김 : 신랑은 어디 있나요?
박 : 없어요.
김 : 어디 갔나요?
박 : 유학갔어요. 일본으로요.
김 : 신랑 이름은 뭐죠?
박 : 홍철요.
김 : 시부모님 성함은요?
박 : 시아버님은 홍경동이요.
김 : 연세는요?
박 : 마흔둘이나 셋.
김 : 당신 성은 뭔가요?
박 : 김.
김 : 김금례인가요?
박 : 네.
김 : 친정은 어딥니까?
박 : 가까워요.
김 : 친정아버님 성함은요?
박 : 김홍균. 어머니는 이서경.
김 : 아버님 연세는요?
박 : 친정아버님은 서른아홉. 내가 맏이예요.
김 : 동생은 몇인가요?
박 : 넷요. 모두 남동생이에요.
김 : 이제 하나에서 셋을 세면 친정식구들과 같이 있는 때로 갑니다. 하나, 둘, 셋. 어디 있습니까?
박 : (더 어린 말투로) 고추 다듬어요. 엄마랑, 할머니랑요. 동생들은 옆에서 놀아요. 우물가의 넓은 마당인데 

     아줌마들도 고추 다듬어요. (즐거운 듯 들뜬 목소리로) 머리에 수건 쓰구요.


김 : 몇 살인가요?
박 : 열 살요.
김 : 뭘 입고 있나요?
박 : 머리 땋구요 까만 치마 입었어요. 흰 저고리예요.
김 : 계절은 언제죠?
박 : 고추 다듬어요. 가을, 여름에서 가을 그땐 거 같아요.
김 : 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박 : 어디 가셨나 봐요. 여긴 안 계세요.
김 : 엄마는 (현생에서) 아는 분인가요?
박 : 엄마는 아는 분은 아닌데, 아주 좋아요.
김 : 동생들은요?
박 : 둘은 옆에서 놀구요, 하나는 방에서 잔대요.


김 : 이제 다음의 중요한 사건으로 가봅시다. 어디 있습니까?
박 : (떨리는 목소리로) 껌껌한 데에요.
김 : 거기가 어딥니까?
박 : (속삭이듯) 남편 면회왔어요.
김 : 당신은 몇 살인가요?
박 : 스물여덟.
김 : 남편이 어디 있나요?
박 : 감옥에요.
김 : 왜 감옥에 갔나요?
박 : (괴로운 듯) 뭘 잘못했대요.나라를 달라고 종이를 뿌렸대요.
김 : 남편을 만났나요?
박 : (괴로운 목소리로) 만나게 해달라는데 안된대요.
김 : 지금 마음이 어떤가요?
박 : 아 너무 슬퍼요.
김 : 남편을 사랑했나요?
박 : (간절하게) 네.


김 : 다음 사건으로 갑니다. 어디 있습니까?
박 : (힘없이) 집에요.
김 : 누구와 있습니까?
박 : 아들요.
김 : 아들은 몇 살입니까?
박 : 일곱 살요.
김 : 아들 이름은?
박 : 성원이요. (작은 소리라 '성원'인지'정원'인지 확실치 않음)
김 : 가족들은 어디 있나요?
박 :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혼자서요.

김 : 언제요?
박 : 남편이 죽은 후에요. (슬프고 맥없는 목소리로) 어머님은 같이 계세요.

김 : 다음의 중요한 순간으로 갑시다. 어디 있습니까?
  

박 : 방에요.
김 : 몇 살입니까?
박 : 서른넷요.
김 : 뭘 하고 있죠?
박 : 아파요.
김 : 어디가 아픕니까?
박 : 장질부사요. (오늘날에는 '장티푸스'라고 부른다)
김 : 죽어가나요?
박 : 네.
김 : 아들은 어디 있습니까?
박 : (괴로운 듯) 아 목말라요.
김 : 설사를 많이 했나요?
박 : (입술을 핥으며) 목말라요. 어파요. 목말라요.
김 : 다른 식구들은 어디 있나요?
박 : (체념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없어요. 어디 갔어요.


김 : 자, 이제 죽음의 순간으로 갑니다. 지금 어디 있나요?
박 : 방 위에요.
김 : 자신의 모습이 보이나요?
박 : 네.
김 : 또 뭐가 보이나요?
박 : (담담하게) 촛대 요강 문갑 그런 것들이 보여요.
김 : 그대로 시간이 흘러갑니다. 계속 보이는 것을 얘기하세요. 지금은 어디 있습니까?


박 : 빛 속에요.
김 : 빛이 보이나요?
박 : 가만히 있어요 빛을 따라가요.


김 : 또 뭐가 보입니까?
박 : 점요.
김 : 무슨 점입니까?
박 : 빛이 모여서 된 점요. 그리로 계속 빨려가고 있어요.
김 : 끝까지 갑니다. 뭐가 있습니까?
박 : (황홀한 듯) 흰 비둘기가 보여요. 흰 알과 흰 꽃들 비둘기 둥지도 하얗습니다.
김 :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박 : (또렷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이 없는 곳이에요.
김 : 슬픔이 없다는 말인가요?
박 : 네.
김 : 이 생애의 의미는 뭡니까?
박 : 사랑요. 아쉬운 사랑요.
김 :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박 : 꼿꼿한 사람. 사랑을 잘 표현 못했어요.
김 : 남편과는 얼마나 살았죠?
박 :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1년 정도요.
김 : 아기는 언제 가졌나요?
박 : 공부하러 갔다가 중간에 왔을 때요.
김 : 남편은 이번 생애에서 아는 사람이 아닙니까?
박 : 얼굴이 안 보여요.
김 : 하나에서 다섯을 세면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으로 갑니다. 하나, 둘 , 셋, 넷, 다섯.


박 : (행복한 듯 웃는 얼굴로) 남편과 같이 방에서 얘기해요. 

     남편은 얼굴이 하얗고 눈이 작고, 귀엽고 착하게 생겼어요.
김 : 무슨 얘기를 하나요?
박 :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내가 아버님과 어머님께 잘해드려서 고맙대요.
김 : 그 장질부사는 많은 사람들이 걸렸나요?
박 : 아는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다 도망갔어요.
김 : 아들은 어디 갔나요?
박 : 할머니가 데리고 갔어요.
김 : 당신은 아파서 남았나요?
박 : 네, 혼자요.
김 : 다들 떠날 때 마음이 아프지 않았나요?


박 : (힘있는 목소리로) 아뇨, 딴 사람들이 그런 병에 걸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안 간다는 걸 내가 막 가라고 했어요. (울먹이며) 아이를 잘 키워야 되니까요. 어머니가 잘 키우실 거예요.
김 : 어머니와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나요?
박 : 충청도 홍성요. 어머님의 친정댁요.
김 : 거기서 아이가 잘 자라는지 알 수 있습니까?
박 : 몰라요. 하지만 똑똑한 아이예요.


혼자 남아 방안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식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생겼고,다른 식구들에게 병이 옮기면 

안된다고 오히려 걱정을 했다.퇴행의 마지막 부분을 진행할 때 나는 그 목마름의 호소에 가슴이 아팠고,

한 서린 체념과 아쉬움에 숨죽이고 같이 울었다.일반적인 환상이나 상상은 이런 강렬한 정서를 동반하지 못한다.

 

이 환자는 지금도 신경을 많이 쓰거나 피로해지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설사를 자주 한다.

내과적인 검사상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지만 복통과 설사로 자주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나는 이 증상들이 전생의 경험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1920년대 초기의 우리나라 전염병 발생 기록을 

뒤져보면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22년에는 평양 시내에서만도 40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1,000명 이상이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서울의 기록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자가 죽은 해는 1922년이나 1923년으로 추정되는데, 혹시 1~2년의 오차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절에는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병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또다른 사례들


폐소 공포증이라는 병이 있다.좁은 곳에 들어가면 금방 숨이 막힐 것처럼 불안해지고 식은땀이 나서,그곳을 

도망치듯 탈출해야 하는 병이다.이런 증세 있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나 지하철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높은 건물을 걸어올라가거나,길이 막혀도 지상교통수단 만을 고집한다.

신정숙이라는 20대의 아가씨는 이런 증세로 여러 해 동안 신경 정신과적인 분석치료도 받았고 

약물복용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그러나 약을 하루만 중단해도 불안한 증세가 견디기 어려워 나를 찾아왔다.


전통적인 정신과 치료는 해볼 만큼 했으니 최면을 이용한 치료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긴장 이완과 자기최면을 한두 차례 지도한 후에 나는 환자의 잠재의식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했고,

그 대답은 그 증세의 원인이 전생의 경험에 있다는 것이었다.또한 그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면 

폐소공포증의 증상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대답도 얻어냈다.


잠재의식과의 대화란,환자의 손가락을 이용해서 잠재의식으로 부터 직접적인 대답을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최면기법의 일종으로,이 방법을 쓰면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가락들이 잠재의식의 지시에 따라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된다.그날은 일단 환자의 잠재의식에게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만 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잠재의식의 대답을 확인하고 돌려보냈다.


다음주에 나는 다시 한 번 전생의 기억을 되살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확인한 후 환자를 서서히 퇴행시켰다.

그러자 환자는 약 300년 전 중국에서의 생애에서 도적떼에게 쫓겨 산중의 동굴 속으로 깊숙히 피신했다가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추위와 어둠 속에서 굶어죽은 생애를 기억해냈다.


이 단 한 번의 퇴행 이후, 고질적이던 폐소공포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환자는 그 비참한 죽음의 기억이 처음에는 불쾌하고 충격적이었지만,시간이 가면서는 오히려 자신이 불멸하는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자각으로 이어졌고,폭넓은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공포증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그 중에는 이 환자처럼 전생의 기억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 

외국의 사례들에서도 밝혀지고 있다.비만증은 그 원인이 전생의 경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최중기라는 28세의 남자는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체중을 줄여 보려고 했지만 언제나 85kg 정도까지 

갔다가 다시 원래의 체중인 95kg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전생의 기억에서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깊은 산속에서 몸을 다치고 길을 잃어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죽지는 않았지만,얼마 후 그는 전쟁에서 적에게 사로잡혀 완전히 뼈와 가죽만 

남을 만큼 말라버렸다. 이번에도 죽지는 않고 풀려났지만,그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을 떠올린 후 그는 식사량이 많이 줄어들었고,그 좋아하던 간식도 완전히 끊었다. 

아직 자신이 원하는 날씬한 모습은 아니지만,착실히 정상 체중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난치 증상들을 지니고 나와 함께 전생의 기억들을 찾아 도움을 얻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

그 중에는 편집증과 조울증,강박증 등 정신과 영역에서 골치 아픈 것으로 소문난 병들이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이들의 사례는 또 소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최면을 이용한 치료는 정신적인 질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최면을 이용하여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강화해나가면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이런 방법으로 

인간의 신체 내에 잠재되어 있는 치유력을 이용하여 불치의 병을 낫게 한 사례들도있다.

실로 최면의 이용 범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으며,이런 치료법은 미래 의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전생퇴행요법의 역사와 현황


1960년 이전에는 전생의 기억에 대한 보고가 거의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브라이디 머피를 찾아서 The Search for Bridey Murphy>라는 책 이야기다.

미국 콜로라도의 모리 번스타인Morey Bernstein이 버지니아 번스 타이Virginia Burns Tighe 부인을 1

552년에서 1953년에 걸쳐 전생의 기억 속으로 퇴행시 그녀의 전생이 1800년대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살았던 

'브라이디 머피'였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처음에는 번스타인 자신도 전생의 기억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심했지만 횟수를 거듭함에 따라 확신이 생겼다.

타이 부인은 벨카스트의 생활들과 여러 가지 세부적인 상황들을 자세히 기억해냈는데,당시에는 반박도 많았지만 

나중에는 기록된 사실이 틀리고 오히려 그녀의 기억들이 정확한 사실이었다는 것이 많은 부분에서 확인되었다.

 

이안 스티븐슨 Ian Stevenson 박사는 전생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Twenty Cases Suggestive of Reincarnation>이라는 책을 통해 국내서도 소개된 

사람이다.그의 연구는 엄격한 사실 확인에 기초를 두어 세계적인 환생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연구 이외에도 기록상으로나 고증을 통해서 확인된 환생의 사례들은 무척 많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여 현재의 문제들을 치료하는 전생요법의 기초는 사실상 프로이트의 이론인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데니스 켈시Denys Kelsey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모든 기억을 간직하는 부분이 살아남는다는 가설을 주장했고,1967년에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조앤 그랜트Joan Grant와 함께 <많은 생애들Many Lives>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은 의학 전문가가 쓴 최초의 전생요법 관련 저술이다.1970년대에는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시도가 있었다.이들은 모두 치료를 통한 증상의 소실을 목표로 삼았고 전생의 경험에 묶인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킴으로써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이해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인간 영혼의 순례와 생명의 의미라는 쪽으로 관심의 방향이 옮겨졌고,

이때부터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의 새로운 이론에 따라 '의식consciousness' 자체가 궁극적인 존재라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인 의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80년대 말에 이르러 이들은 인체를 하나의 '에너지 장'으로 인식하고 치유의 개념을 '에너지의 변형'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래리 도시Larry Dossey의 <영혼을찾음Recovery of the Soul>(1989),

버니 시켈Bernie Siegel의 <사랑,의학,그리고 기적Love, Medicine,and Miracles>(1988),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의 <양자 치유Quantum Healing>(1989) 등이 이런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준 책들이다.


이 시기에 출간된 전생용법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중요한 저술로는 

조엘 휘튼Joel Whitton의 <삶 사이의 삶Life between life>(1986),

브라이언 와이스Brian Weiss의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Many Lives,Many Masters>(1989),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의 <커밍 백Coming Back>(1990),

로저 울거Roger Woolger의 <다른 생애, 다른 자신Other Lives,Other Selve>(1987).

가렛 오펜하임Garret Oppenheim 의 <당신은 이전에 누구였나Who Were You Before You Were You?>(1990) 


특히 조엘 휘튼의 <삶 사이의 삶>은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사후세계에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전생에 대한 탐구와 전생퇴행요법을 연구하는 단체로 '전생 조사와 치료 협회가 있다.

1980년에 발족된 이 단체에는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많은 의료인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전생치료에 관한 세미나와 퇴행요법,사례연구와 치료성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86년부터 1년에 두 번씩 <퇴행치료 저널Journal of Regression Therapy>을 발간하고 있다.

전생퇴행용법은 놀라운 치료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전생의 기억이 맞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회의론자들은 언제나 트집을 잡는 수단으로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도 전생퇴행치료 후 회복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체계와 크게 어긋나는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과학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도 당시에는 미친 취급을 받았지만 결국은 그들이 옳았음이다.


최면상태에서 모든 전생의 기억들이 다 진실한 것은 아니다.그 중에는 환상이나 환자의 조작도 있을 수 있다.

또 그 기억들의 정확성 여부도 아직은 더 검증될 부분이 있다. 그러나 많은 고질적 증상들이 극적으로 회복되고 

인생에 대한 관점이 바뀌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놀라운 결과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머지않아 많은 의사들이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임상 최면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Hypnosis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최면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에 대해 연구하는 학술단체이다. 나는 올해 3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의 올랜도에서 열린 제38차 미국임상최면학회 연례학술대회에 참가해서,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전생퇴행치료에 대한 의견과 경험 여부를 물었다.

 

캐나다에서 온 정신과 의사인 건슨Gunson 박사와 플로리다의 치과의사인 애덤스Adams 박사,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의 내과 의사인 스콧Scott 박사 등은 자신들이 직접 시술을 해보았거나 주위에서 

전생퇴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많은 경험은 없었다.

내 환자들의 사례를 듣고 이들은 큰 관심을 보였고,서로 정보를 계속 교환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또한 정신과 의사로 미국임상최면학회의 회장인 클루프트Kluft 박사와,전 회장인 유인Ewin 
박사등도 새로운 

정보에 대한 협조를 약속했다.특히 유인 박사는 자신의 환자들 중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 후 회복된 두 사람의 

얘기를 들려주었다.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고,그 결론은 무척 고무적인 것이었다.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안 쓸 이유가 없다'는 미국식의 실용정신을 확인한 셈이었다.

아직은 미국 내에서도 이 치료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워낙 넓은 나라이고 남들이 뭘 하는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들의 문화적인 특징 때문이다.그러나 치료자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전생퇴행요법이 널리 알려져 있고 호응도도 무척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인 박사는 내게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사후의 생명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생이 있다는 것도 증명은 안 되었지만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특히 당신네와 같은 문화배경에서는 전생의 믿음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특별히 그 분야를 연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 후 회복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계속 

관찰하면서 지켜보겠다.'라고 말하며 나에게 계속 연구해볼 것을 권했다. 

앞으로 일반적인 치료의 원리와 결과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환자들의 치료결과가 모아져야 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여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들


최면을 이용한 전생으로의 퇴행은 능숙한 시술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런 시술자들이 

없는 상태이다.자기최면의 기법을 올바로 익힐 수만 있다면 혼자서도 전생 퇴행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최면술 자체가 환자 진료에 거의 쓰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기최면을 제대로 

배울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최면이 치료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자기최면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 나는 작년에 

최면 유도 녹음테이프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그것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필요한 환자들에게 나눠주고 

하루에 한 번씩 들어보라고 했다.


그 방법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테이프를 듣는 것만으로도 긴장의 완화와 증상의 호전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고,

때로는 단편적이나마 전생의 기억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꿈을 기록하거나 명상을 자주 하면 전생의 기억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명상은 최면과 마찬가지로 잠재의식이 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완된 상태라서 자주 연습할수록 최면을 

이용한 퇴행에 도움이 된다.자기 자신의 취향이나 성격,기호,애착을 가지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대상,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상 등 사실상 자신의 모든 것들이 과거 경험들의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현재 상태와 주변을 살핌으로써 과거의 경험들을 추측해낼 수도 있다.

몸에 나타나는 반점이나 신체적인 증상들도 전생의 경험들의 단서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전생의 죽음에서 치명상을 입은 부위가 계속 아프거나 그 부위에 점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들의 보고도 있다.

이렇게 작은 영상들과 조각조각의 단서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전생 퇴행이라는 것이다.


한두 번의 최면 시술로 모든 것을 보려는 사람들 중에는 필요한 준비와 과정을 설명해주면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평균적으로 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전생의 기억들을 풍부히 가지고 있으며 반드시 그것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느긋하게 임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불편한 인간관계,잘 안 풀리는 일들은 여러 생애를 거치면서 반복되는 병적인 문제일 수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카르마를 이해하고 해결할 문제들을 이해함으로써만 순환되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을 해결 못하면 다음 생에서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게 되는 것이다.

삶이 배움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어려움을 포용할 때에만 우리에게 진정한 탈출구가 열리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치료자의 선택


전생요법은 만병통치의 마술적 치료 방법이 아니다.어디까지나 치료자가 환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해야 한다.불필요한 환자에게 이 요법을 권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되며, 

치료자 자신의 호기심이나 지적 만족을 위해서 시행해서도 안된다.

 

치료자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정신치료의 기법들과 이론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풍부한 최면시술의 임상경험이 

있어야 한다.최면술은 중요한 의료기술의 하나이기 때문에 미국임상 최면학회는 의사와 치과의사,임상심리학자 

등의 전문적 의료인들에게만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최면술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과 엄격한 윤리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최면술을 가르치는 공식기관이 없는 상태이다.

환자의 정신적 증상들이 신체적인 이상에 원인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치료자는 내과적인 지식과 

진단 능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고,종교적인 문제나 초심리학의 분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목소리나 영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여러 가지 치료 기법들을 병행할 수 있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치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순수한 염려와 사랑이다.

어떤 치료법도 무성의 하거나 비윤리적인 치료자의 손에서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전생치료자들 중에는 지나치게 비약적인 초심리학 이론과 자기도취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방법을 쓰면 카르마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의 목소리들이 알려준 판단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


치료자가 '진정으로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는가?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은가?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수한 사람인가? 하는 점들을 살펴야 한다.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환자 자신의 직감이다


치료자에 대해 객관적으로는 나무랄 것이 없지만 뭔가 편치가 않거나 석연찮은 느낌이 들면 굳이 그 사람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자기와 맞는 치료자를 만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 신에 대하여


지혜의 목소리들은 우리에게 우주의 유일한 절대자인 신에 대해 거듭 말하고 있다.

우주의 원리는 신의 사랑이며,그 사랑이 곧 진리 자체라고 말한다.

이같은 가르침은 미국에서 보고된 '목소리'들의 단편적 가르침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생명은 신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영혼들이며, 궁극적으로는 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발표하지 못했지만 원종진 환자의 열한번째 퇴행에서 목소리들은 모든 생명을 존중할 것을 당부했다.

벌레의 생명도 나름의 가치와 존재이유가 있으니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하며 현재의 환경 파괴가 살고 있는 무수한 작은 생명들을 빼앗기 때문에 위험한 행위라고 했다


물질문명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질은 물질이 아닌 영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불멸의 생명을 가진 영원한 존재라는 자각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귀중한 힘이 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공부하고 배우러 이 세상에 왔으며,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이 

진리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전생 퇴행을 통해 얻게 되는 궁극적인 가르침은 현재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하도록 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존재의 근원과 목적에 대해서까지 눈뜨게 한다.원종진 환자가 전하는 지혜의 목소리들의 다양한 가르침과 

예언들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존재와 우리의 실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이 가르침을 받아 들일 때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것이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끝없는 세월의 벽을 넘어 계속 이어져오는 것라고 믿는다면 서로에게 

더 깊은 애정으로 대할 수 있고,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도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는다면 

그 어려움은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마음속에 사랑과 겸손이 자람에 따라 영혼의 성장을 지속해 나간다면 모든 부정적인 카르마의 영향을 극복하고 

우주의 근본흐름과 원리인 사랑의 진동에 스스로를 맞춰감으로써 우리 모두가 신의 생명을 나누어받은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태어남을 위한 과정이고,이별은 없으며,모든 부정적 감정과 사고는 허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실의 모든 고통은 내 영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거름이고 은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혜의 목소리들'의 가르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계속되는 가르침과 예언들이 쌓이고 있다.

 

앞으로 이 메시지들을 같이 나눌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편견과 관습적 사고를 버리고 진정으로 마음을 열면 새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것이다.

새로운 지식들이 새로운 방법을 통해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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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산트| 원글보기 


출처 : 통일한국 원로원
글쓴이 : Cosm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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